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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Jun 16. 2017

<하루 A Day>

매일 반복되는 '하루'는 역시 지겹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하루는 역시 지겹다.


아침에 눈을 뜨고, 학교 혹은 직장으로 향한다. 오늘 할 일을 적당히 해내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가 끝난다. 내일도 그럴 것이다. 모레도. 매일 같은 곳을 향해 갔다가 돌아온다. 매일매일이 똑같다고 느끼는 순간 삶은 지겹다. 하지만 반복되는 하루에도 지겹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 안에서 새롭게 감정을 일으키는 무언가 있다면 우리는 그 하루를 기억한다. 결국 어제와 다른 하루를 만난 것이며 또 다른 내일을 만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영화 <하루>는 새로운 감정을 일으키지 못했다. 배우들의 호연이 무색할 정도로.

해외에서 봉사를 하던 의사 준영(김명민)은 딸을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다. 약속 장소로 향하던 준영은 교통사고를 당한 딸을 발견한다. 이후 딸의 교통사고 발생 2시간 전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반복된다. 같은 시간, 준영은 자신과 동일한 상황에 처한 민철(변요한)을 만나 하루에 얽힌 비밀을 풀어나간다.

이 영화의 장점은 배우들의 연기다. 타임루프*라는 장르적 특성상 같은 공간에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만 인물의 기억과 생각, 감정은 변한다. 이는 영화가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에게 상당히 기대고 있다는 의미다.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은 초반부터 절정이다. 시작부터 딸이 죽고, 아내가 죽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섬세하게 연기를 해야 한다. 극단에 치달은 감정은 자극을 주지만 지속되면 관객들은 그 자극에 무뎌지고 지친다.

(*타임루프 :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이 동일한 기간을 계속 반복하는 것)


흠잡을 곳 없는 김명민의 연기


그럼에도 김명민의 연기는 흠잡을 곳이 없다. 비행기 안에서 시작되는 하루는 새로 시작될 때마다 다른 감정이어야 한다. 김명민은 이를 위해 몇 번 반복된 것인지 숫자를 세고 각 순서마다 키워드를 정했다. 예를 들어 딸의 죽음을 본 뒤 첫 타임루프 때 키워드는 ‘혼란’이다. 이때는 죽은 딸을 보고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을 못하는 상태다. 두 번째는 ‘스피드’다. 딸의 죽음을 막기 위해 전속력을 내는 상황이다. 세 번째는 ‘절망’, 다음으로 ‘혼돈’, ‘위기’ 등 각 키워드에 맞게 연기를 준비했다. 김명민은 감독이 “몇 번째 루프다”라고 알려주면 그에 맞춰 연기했다.

영화 초반부의 빠른 전개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의사 준영(김명민)은 딸을 구하기 위해 반복되는 하루 속에 변화를 꾀한다. 이는 마치 과학 실험처럼 느껴진다. 준영이 비행기에서 내린 순간부터 교통사고 장소까지 오는 동안 겪는 일들은 ‘독립변수’다. 사탕이 목에 걸린 아이, 공항 기자회견, 잔돈을 떨어뜨리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계산원, 교통신호 등이 이에 해당한다. 준영의 딸이 사망하는 것은 ‘종속변수’다. 특정 독립변수를 바꿀 때 종속변수에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실험하는 것이다. 영화가 절반을 넘어가기 전까지 준영의 이러한 실험은 빠른 속도로 여러 번 반복된다. 이 영화를 옆자리에서 함께 본 친구는 네 번째 실험 때 잠이 들었다. 과학적 실험 때문에 흥분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준영은 8번이 넘게 실험을 반복한다.


반복되는 하루가 지겨웠던
친구는 잠이 들었다.


친구가 잠에서 깬 순간은 하루가 반복되는 이유가 밝혀졌을 때다. 급박하게 흘러가던 하루가 갑작스레 느려진다. 같은 하루를 사는 사람이 준영과 민철(변요한)뿐만 아니라 한 명이 더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새로 등장한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잠을 깨웠지만 그 이후 보여주는 장면의 연출은 억지스러워 불편하다. 그 인물은 거의 죽기 직전인데 준영의 대사와 주사 몇 방에 이 같은 일이 벌어진 이유를 또박또박 설명한다. 몸은 피투성이라서 눈을 뜨기도 쉽지 않다. 이 장면은 그가 준영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스토리를 알려주려는 의도가 뻔하게 드러난다. 하루가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관객을 설득하기 위한 장면인 것이다.

하루가 반복된다는 설정은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개봉한 <7번째 내가 죽던 날>도 같은 날이 반복된다는 설정이다. 타임루프라는 소재는 신선하지 않다. 영화 <하루>가 새롭지 않은 소재로 새로운 영화를 만들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조선호 감독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자의 하루, 매일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남자의 하루”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이는 하루가 반복되는 이유와 그들의 심경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가 완성되지 않았다.

장르적 쾌감과 휴머니즘 사이


정리하면, 영화 <하루>는 하루가 반복되는 사람들이 있고, 반복을 막기 위해 독립변수를 여러 차례 바꾸는 실험을 하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관객을 설득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에서는 강조할 부분을 명확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반복하는 과정에서 종속변수의 변화를 크게 만들어 장르적 쾌감을 형성할 수 있다. 반대로 영화 속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휴머니즘을 강조할 수도 있다. 여러 버전으로 시나리오를 썼다는 감독은 장르적 쾌감을 강조하는 유형도 있었다고 밝혔다. 결국 그는 인물들의 감정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선택했다고 말했지만, 결과물은 장르적 쾌감과 휴머니즘 사이에 고민한 흔적만 역력해 이도 저도 아니게 됐다. 개봉 이틀째(6월 16일), 이 영화는 현재 예매율 1위다. 관객들의 호불호는 크게 갈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안타깝다.



(사진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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