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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Jun 28. 2017

당신의 감정을 배반하는 영화

영화 <엘르 Elle> 리뷰(해석, 결말)

몸에 상처가 나면 아픈 것처럼 마음 또한 그렇다. 몸과 마음에 모두 상처가 나면 어떨까. 여기 성폭행을 당한 피해 여성이 있다. 그녀는 몸에도 마음에도 상처투성이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는 당사자만큼은 아니지만 그 고통의 근처까지 다가가 공감하려 한다. 이는 아주 본능적인 것이다. 그리고 묻는다. “많이 힘들지?” 이때 그녀가 갑자기 “아니, 너무 좋아”라고 말한다. 이 말이 진심이 아니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방금까지 느꼈던 감정에 대한 배신감이 파도처럼 온몸을 덮쳐온다. 영화 ‘엘르’는 우리가 평생에 걸쳐 쌓아온 감정의 방향성을 명백히 배반한다.


남편과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는 미셸(이자벨 위페르)은 어느 날 괴한의 침입으로 성폭행당한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에도 신고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이후 위기감을 느끼던 미셸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다시 괴한이 침입한 날, 그녀는 감추고 있던 욕망이 깨어낸다.

이 영화는 불편하다. 관객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구석이 없다. 시작부터 중년의 여성이 덩치 큰 괴한에게 피해를 입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 예상되는 경찰의 조사나 피해 여성의 정신적 치료는 없다. 미셸은 그저 사건 이후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는지 아닌지만 확인한다.


이 불편한 영화를 만든 감독은 ‘폴 버호벤’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익숙지 않지만, 80년대 말부터 90년 대 초까지 그의 작품은 역사적 발자취를 남겼다. ‘로보캅’(1987년), ‘토털 리콜’(1990), ‘원초적 본능’(1992) 등 당시 ‘가장 파격적인 감독’이라고 불리며 할리우드의 기념비적 영화를 만들어왔지만, 이제는 서서히 잊혀가는 감독이었다. 2006년 ‘블랙북’ 이후 10년 만에 영화 ‘엘르’가 칸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에 첫 공개되며 돌아온 폴 버호벤. 영화계는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과 여우주연상 외에도 수많은 시상식의 노미네이트로 화답했다.

이 영화는 주변 인물만 비추는 장면이 거의 없다. 오로지 주인공만을 시작부터 끝까지 비춘다. 주인공 미셸은 성폭행을 당하고, 친구와 동성애, 그 친구의 남편과 바람을 피우고, 창문으로 남성을 훔쳐보며 자위를 하는 등 불편한 일탈의 연속을 보여준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영화 중반이 넘어서면 관객들의 머릿 속은 복잡해진다. 어느새 미셸의 행동에 대한 불편함은 덜어지고 그녀의 방식을 이해하려 한다. 이때 우리는 평소의 가치관과 충돌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가 들춰내려는 인간의 감정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불온한 욕망이다.


이러한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연기할 배우로 감독은 ‘이자벨 위페르’를 선택했다. 폴 버호벤 감독은 처음에 ‘엘르’를 찍으러 할리우드로 갔다. 그리고 니콜 키드먼, 줄리안 무어, 샤를리즈 테론, 샤론 스톤, 제니퍼 제이슨 리, 마리옹 꼬띠아르, 다이안 레인 등을 캐스팅 리스트에 넣었다. 하지만 이 불온한 욕망을 대놓고 표현하는 캐릭터에 배우들은 전부 거절했다. 때마침 이자벨 위페르가 ‘엘르’ 시나리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소식에 감독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프랑스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영화가 완성되고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찍었다면 이 정도로
진실된 영화는 찍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중반이 넘어가면 괴한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때 우리는 감정의 배반을 당한다. 괴한이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미셸(이자벨 위페르)의 반응 때문이다. 자신을 강간한 가해자를 만났을 때 관객 머릿 속에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봐왔단 예상 가능한 감정과 대응이 불현듯 떠오른다. 영화는 그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간다. 영화 ‘엘르’의 매력은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늠할 수 없는 감정에 있다. 감독은 이 감정을 연기한 이자벨 위페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환상적인 연기를 통해
등장인물의 행동을 납득시켰다


미셸은 어린 시절에 참혹한 경험을 했다. 그의 아버지가 27명을 살해한 살인마고, 현장에는 10살의 미셸이 있었다. 그 폭력적 경험이 그녀를 익숙하게 만든 것일까. 미셸은 영화 속 등장인물 그 누구보다 높은 사회적 위치에 있다. 회사에서는 사장이고, 주변 인물들보다 부유하며 그녀를 종속시키는 어떠한 환경도 없다.


영화 속 등장인물 중에서는 단 한 명도 평범한 사람이 없다. 아들은 사고뭉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질을 부리는 다혈질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겠다고 나타났다. 오래된 친구 안나(앤 콘시니)는 미셸과 어린 시절부터 동성애적 감정을 교류했다. 안나의 남편은 미셸과 성적 쾌감만을 나누는 파트너다. 이 외에도 몇 명이 더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 순결하고 아무런 일탈이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미셸의 아들 빈센트가 낳은 자식이다. 이제 막 태어난 그가 백인의 자식임에도 흑인인 것이 불편하지만,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빈센트의 아들에 대해 이동진 평론가는 '성경 속 마리아의 처녀잉태를 과격하게 비틀었다'고 표현했다.

폴 버호벤 감독의 이러한 폭력적이고 불온한 설정과 표현은 우리 사회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부수려는 시도로 보인다. 도덕과 비도덕, 종교와 사이비, 폭력과 비폭력, 정치적 올바름 등에 현대인들이 들이대는 알 수 없는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누가 언제부터 그런 기준을 만들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그 기준으로 손쉽게 옳고 그름을 판단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양산하는 현대인들에게 날카로운 풍자를 날린다. 그로 인해 우리는 불편하다.


다만 이 영화의 성취가 시나리오를 쓴 감독보다 캐릭터를 연기한 이자벨 위페르의 역할이 더 컸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영화에 대해 다양한 해석들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감독은 “나는 여지를 열어 두는 것을 좋아한다”며 이 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던졌다.


우리의 인생처럼
미소 뒤에 무엇이 숨었는지,
혹은 아무것도 숨어 있지 않은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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