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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Jul 07. 2017

영화 <옥자 okja>

나쁜 사람을 만든 상황과 시스템

저 사람 나쁘다. 나쁜 사람.


우리는 가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혹은 뉴스를 보며 말한다. 저 사람 나쁘다고. 이 말에 의문이 든다. 인간 중에 좋은 점 하나 없이 나쁘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무엇을 보고 나쁘다고 말하는 걸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뭐지. 영화 ‘옥자’는 한 인간 혹은 집단이 언제 나빠지는지, 무엇이 우리를 나쁘게 만드는지 동물 '옥자'를 통해 드러낸다.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는 옥자와 10년 간 가족처럼 지내왔다. 어느 날,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나타나 갑자기 '미래의 식량, 슈퍼돼지'라고 부르며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간다. 할아버지(변희봉)의 만류에도 미자는 옥자를 구하기 위해 떠난다.

*스포일러 있어요.

이 영화는 3대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극장과 넷플릭스라는 온라인 스트리밍 방식으로 개봉했다. 하지만 필자는 확신한다. 극장이 아닌 곳에서 ‘옥자’를 봤다면 당신은 옥자를 아직 다 보지 못했다고. 칸 영화제 측은 “영화 ‘옥자’를 아이패드로 보는 것은 낭비”라고 평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촬영에 사용된 카메라를 꼽을 수 있다.


필름보다 더 필름 같은 카메라


영화 ‘옥자’는 전 세계에 10대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진 '알렉사 65' 카메라로 찍었다. 이 카메라는 대자연이나 아주 복잡한 도심을 찍을 때 섬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화면에 담아낸다. 봉준호 감독은 디지털 방식보다 필름 방식 카메라로 찍는 것을 선호한다고 수 차례 이야기했다. 하지만 필름을 현상할 수 있는 곳이 국내에는 없다. 그래서 고민 끝에 봉 감독은 "필름보다 더 필름 같은 디지털카메라를 쓰자"라고 결정했다. 영화 초반과 후반은 한국의 아름다운 대자연과 뉴욕의 삭막한 도심이 극적 대비를 이룬다. 이를 화면으로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하기 위해 감독은 높은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알렉사 65’ 카메라를 활용했다. 봉 감독은 “알렉사 65는 대자연을 찍으면, 햇빛 아래 날아다니는 날벌레까지 포착해 스크린 너머 공간에 실제로 들어가 있는 느낌을 주는 카메라다”라고 극찬했다.

영화에는 세계적인 배우들들이 등장한다. 틸다 스윈튼, 폴 다노, 스티븐 연, 제이크 질렌할 등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루시, 낸시 1인 2역을 맡은 틸다와 괴짜 박사 조니 윌콕스 역을 맡은 제이크의 과장된 제스처나 톤은 나름 잘 소화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 옥자와 미자가 중심이기 때문에 그들의 분량은 상당히 적다. 세계적인 배우들의 연기를 즐길 만한 장면이 많지 않다. 이로 인해 ‘굳이 이런 대배우들을 섭외했어야 했는가’라는 의문은 남는다.


영어 패권주의(supermacy) 비판


여담이지만, 이 영화의 번역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 그중 가장 알려진 부분은 케이(스티브 연)가 트럭에서 한강으로 뛰어내리면서 미자에게 “미자야! 내 이름은 구순범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넷플릭스 측은 이 대사 위에 "Mija! Try learning English. It opens new doors!(미자야, 영어를 공부해봐. 그러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거야)"라고 자막을 달았다. 미국의 문화 전문 매체 ‘Vulture’ 지는 “이 번역은 완전히 잘못된 번역이지만, 봉준호 감독이 의도한 것이다.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이해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농담”이라며 “이는 영어 패권주의(supremacy)를 전복(subversion)시키는 것이다”라고 평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돈으로 옥자를 구매하는 미자를 보며, “기업을 나쁘게 그리더니 돈으로 해결한 거야?”라고 물을 수 있다. 봉 감독이 이 질문들 직접 들었다면 “맞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현실이니까. 영화 속 미자가 아무리 순수한 마음으로 생명체를 소중하게 여겨도 사회 시스템이 앞 길을 막는다면 별 수 있겠는가. 감독이 드러내고자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옥자’는 우리가 순수하게 살 수 없게 만드는 시스템을 고발한다.


마음이 아팠다. 슈퍼돼지 ‘옥자’가 대한민국의 수많은 취업준비생과 입시준비생들 같아서. 순수하게 꿈을 좇을 수 없는 수많은 청년들이 떠올랐다. 오로지 인간의 먹이가 되기 위해 10년을 자란 ‘옥자’가 미국 뉴욕으로 끌려가 자신과 똑같은 슈퍼돼지들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마치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수능시험장에 가는 고3 수험생들 같았다. 기나긴 취업준비를 마치고 공무원 시험 혹은 대기업 적성검사를 보러 가는 구직자 같았다.


나쁜 사람을 만드는 것은
상황과 시스템


봉준호는 늘 그랬다.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은 상황과 시스템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초반부 나쁜 사람은 화성 연쇄 살인범이지만, 후반부에는 무고한 사람을 의심하는 공권력이다. 영화 ‘괴물’에서 초반부에는 인간들을 공격하는 괴물이 나쁘다. 중반부터 피해를 입은 개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공권력과, 더불어 피해자들과 자신을 차별하는 일반 시민들마저 나쁘게 그려진다. 살인사건이 없었다면, 괴물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들을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다.


‘옥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 초반부에는 옥자를 키워서 팔아넘기는 미자의 할아버지 희봉(변희봉)이 나빠 보인다. 중반부에는 옥자를 미디어를 통해 홍보하고 상품을 판매하려는 기업이 나쁜 사람이다. 또한 미래 식량 걱정을 하던 시민들이 슈퍼돼지에 열광하는 것은 어떤가. 이후 미자를 속이고 옥자를 이용해 동물보호 인식을 퍼뜨리려는 ALF* 케이(스티븐 연)도 좋은 사람이고 말하기 어렵다. 결국 금덩이를 주고 옥자를 사면서 몰래 아기돼지를 훔쳐오는 미자는 어떤가. 식량이 부족한 미래 인간들과 수요를 따라 돼지를 키운 기업, 동물보호 인식을 홍보하고 싶은 단체, 산골에서 옥자가 유일한 친구인 외로운 미자 등 이들 모두 자신의 상황에 맞춰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때론 상황 혹은 시스템은 우리를 나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극장 밖을 나오면 당분간 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영화를 본 후 2주 간 고기를 먹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 정도로 영화의 메시지는 강하다. 옥자는 인간과 정을 나누고 언어도 이해하며 밧줄을 이용해 인간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지능도 있다. 이런 옥자를 돼지라고 부르며 불판 위에 올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금방 잊을 거다.


봉준호 감독은 동물보호 혹은 채식주의를 강요하는 영화라는 시선에 대해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육식을 비판하거나 채식을 강요하는 내용이 아니다"라며 "마지막 장면에서 미자도 동물을 사랑하지만 닭백숙을 먹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봉 감독은 영화를 통해 동물이 자본의 대량생산에 희생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대량생산은 사실 인간의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문제가 아닌가. 봉 감독은 "이는 돈을 버는 방법 중 가장 병적이고 안 좋은 방법"이라고 소신을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애완견을 안고 마트에 가서
소, 돼지고기를 카트에 넣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하냐.


(사진=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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