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료로 만든 과일 없는 과일음료
카페를 운영하시는 어머니께서 예상치 못한 손님의 불만에 당황하신 적이 있다. 폭염으로 한 걸음에 한 방울씩 땀이 맺히는 상황에는 시원한 생과일 음료가 인기가 많다. 어머니는 좋은 음료 맛이 과일의 신선도에서 나온다며 소량만 구입한 뒤 자주 재구입하는 방식을 유지하신다. 그러던 어느 날 생과일 음료를 주문한 대학생 손님이 맛이 이상하다며 되돌아왔다.
맛이 너무 밋밋한데,
물 탄 거 아니에요?
어머니는 친절하게 과일을 직접 보여주시며 "과즙만 들어있다. 물은 한 방울도 넣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따지는 손님에게 어머니는 “과일 본연의 단맛을 즐길 수 있도록 인공조미료 시럽도 넣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손님은 “인공조미료 좀 넣지”라고 갑작스레 반말을 던지고 나가버렸다. 황당한 일이지만 조미료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저가 음료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몇몇 카페들은 인공색소와 시럽으로 과일 없는 과일음료를 판매하고 있다. 그 맛이 상당히 강해서 일부 사람들에게는 더 맛있게 느껴질 수 있다. 취향 탓이라고 해야할까.
영화 ‘청년경찰’은 인공색소와 시럽으로 맛을 낸 과일 없는 과일음료 같은 영화다. 영화에 담긴 깊이 있는 생각이나 눈을 사로잡는 놀라운 미장센은 없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저 웃고 즐기고 집에 오면 되는 영화다.
경찰대생 기준(박서준)과 희열(강하늘)은 주말 외박을 나왔다가 우연히 납치 사건을 목격한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수사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기준과 희열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 직접 수사에 나서기로 한다.
박서준과 강하늘의 훌륭한 케미
박서준과 강하늘의 호흡은 상당히 훌륭했다. 어색한 대사들이 있었지만 이는 각본가의 부족한 역량 때문이지 연기의 문제는 아니었다. 강하늘은 이병헌 감독의 영화 '스물'에서 맡았던 캐릭터 경재와 같은 톤의 연기를 보여준다. 마치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의 쉘든처럼 엉뚱한 말을 장황하고 논리적으로 하는 방식의 코미디로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박서준의 연기는 다소 과장되어 있지만 강하늘과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의 경우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청년경찰’ 포스터에는 ‘청춘 수사 액션’이라는 슬로건이 붙어있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포장지를 뜯어보니 조선족 인신매매라는 심각한 강력범죄 소재를 다루고 있어 마냥 웃기만 할 수는 없다.
수사 도중 찾아가는 지하철 2호선 ‘대림역’ 부근은 서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로 묘사됐다. 실제로도 그곳에 가면 조선족과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우범지역으로 흉기 소지를 단속한다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영화 속 액션은 대부분 이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영화는 전체적으로는 범죄 수사 영화인데, 사건을 연결해주는 개연성이 매우 느슨하다. 비어있는 지점은 욕설을 이용한 코미디로 메운다. 이는 마치 지점토를 주물럭거려 끼워 넣은 것처럼 억지스럽다. 기준과 희열이 직접 수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경찰이 신고해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경찰에 신고를 해본 사람은 안다. 강력범죄의 경우 수사가 상황에 따라 지연될 수는 있어도 신고 자체를 안 들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실성 없이 시작되는 수사 외에도 “짭새야” 한 마디에 분노한 경찰이 기준과 동네 한 바퀴를 뛰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경찰대학생이 CCTV 조회를 부탁하는데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현직 경찰이 야근을 자처하며 차량 추적을 하는 것도 상당히 어색하다.
부족한 경험을 채우기 위해 갑작스레 운동을 과도하게 하는 장면은 최민식, 류승범 주연의 영화 ‘주먹이 운다’의 복싱 훈련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이야기 구조상 불필요해서 그냥 박서준의 몸매를 보여주려는 장면으로 인식된다. 몸은 좋았다.
영화 '청년경찰'은 말이 되는 ‘대림동 납치 사건’ 위에 말이 안 되는 ‘학생들의 범죄수사’를 얹은 이야기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극으로 만들 때는 설득력과 개연성이 필수다. 우리는 말도 안 되는 공유의 ‘도깨비’를 보며 가슴에 꽂힌 칼이 뽑히면 사라진다고 슬퍼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일 본연의 맛보다 조미료와 시럽 맛을 즐기는 분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음식과 영화는 언제나 취향의 문제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자기 자신의 취향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취향은 자신의 좁은 경험 속에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 취향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정말 훌륭한 영화를 만나면
이상향, 취향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 영화가 여러분들을 압도시킨다.
취향을 고집하지 않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