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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슬 May 13. 2018

#backpack

여행에 있어 가방의 선택은 중요하다. 어쩌면 여행지를 고르는 것만큼. 어떤 여행을 할 지에 따라 가방의 종류와 소재가 달라질 텐데, 가난하고 영민한 배낭여행자로 포지셔닝하기 위한 나로서는 가방 구매에 몇 가지 조건이 섰다.


우선 가방이 '있어 보이면' 안된다. 새 가방이라지만 최대한 남루해 보여야 하고, 가방 안에는 자질구레하고 돈이 되지 않을 것들로 가득 찬 것 같은 겉모습이어야만 나쁜 마음을 품은 동료 여행자나 도둑들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실제로 돈이 안 되는 것들로만 가방을 채워 다니면 마음이 편안하다. 특히나 인도 같은 터프한 여행지에서는 더욱 그렇다. 없어 보이고, 몇 년 장기 여행한 사람처럼. 내일이면 식량과 여비가 바닥나는 사람처럼 보이는 모양새가 좋다.


그리고 가방의 크기가 작아야 한다. 가방은 냉장고 또는 하드디스크와 같은 속성이라 아무리 큰 것을 사더라도 금세 가득 차게 되니까. 처음부터 채울 수 있는 공간을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행 중에 이른바 '욕심의 무게'를 체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무거우면 힘들고, 장기여행에 몸이 힘들면 고달프고 서럽다. 그러려고 여행하는 건 아니잖아. 티셔츠와 바지를 하나씩 줄이고, 책을 한 권 다시 꺼내 책장에 도로 꽂으면서 욕심을 함께 비워낸다. 그렇게 두 달 여행을 7kg에 담고 있다.


지난 긴 여행에서 수십만 원짜리 등산가방에 채운 17kg짜리 욕심을 짊어지고 고난의 행군을 1년 넘게 이어가며 마음에 담은 가방의 조건. 이번에는 저번과 달리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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