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복직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mi Mar 06. 2024

그놈의 밥이 뭐라고

내가 저녁을 먹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역시는 역시였다

승진은 되지 않았고 나도 대상자로는 올려달라는 말에 제법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팀장은 올리지도 않은 건지 팀 내 다른 승진자 축하에 여념이 없었다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팀 내 다른 승진자는 나도 너무 승진하길 진심으로 바랐던 사람이라 일말의 아쉬움도 없다 그렇지만 올해는 잘 안됐지만 내년에는 같이 열심히 해서 꼭 되게 해 보자는 매우 형식적인 멘트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뻔했다 복직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려울 것처럼 얘기했지만 나보다 늦게 복직한 옆 팀 친구의 승진은 어쩌면 운이라고 그냥 말이라도 해주면 좋았을 뻔했다


이러고 나니 모든 일에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해봐야 뭐 하나 내년이라고 다를까 기운이 뚝뚝 떨어진다


그럼에도 몹쓸 책임감에 일주일에 두어 번은 9시까지 팀에서 혼자남아 야근을 해가며 소심한 복수(?)라고는 지금까지는 하지 않던 1시간 2시간도 오버타임을 올리는 너무나 당연한 권리를 이제는 행사하는 것.


그렇게 파김치가 되어 택시에 기대어 집에 가는데 눈물이 핑 돈다 사실 핑이 아니고 펑펑 수준이다 뭘 위해 이렇게 일하는가 집에 가면 엄마를 기다리다 지쳐 잠든 아이 얼굴을 안쓰럽게 보듬고 쓰러져 잠들기 바쁘다


남편은 회사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온다고 맛있는 걸 먹었다고 자랑하며 사진을 보내온다 오늘은 빨리 끝내려고 군것질 조차 하지 않았다 10시가 다되어 뭘 먹기도 애매하다 근데 내가 저녁을 먹었는지는 물어봐주지 않는다


어쩌면 평생에 내가 저녁을 먹었는지 궁금해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엄마 한 사람일 지도 모르겠다 같이 사는 남편도 팍팍한 육아 생활에 서로의 식사여부를 다정히 챙기는 것은 불가능 한지도. 생각해 보니 연애 때도 그런 면에선 무심했던 것 같기도 하다


밥을 먹었냐고 묻는 것은 식사 그 이상의 따스함과 사랑이 배어 있다 진심으로 아끼고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회사도 육아도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요즘 나에겐 밥을 먹었냐는 이 관심과 사랑이 절실히 필요하다 진짜 밥보다 더 나를 배부르게 할 한마디 인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밥은 먹었냐 힘들겠다 굶지 말고 일해라 몇 마디 따뜻한 말 한마디면 나에게서 몇십 배 몇백 배의 따뜻한 말과 배려가 나갈 텐데 남자들은 이런 가성비 좋은 투자방법을 모르니 안타깝기도 하다


뭐 그래도 어쩌겠어

누가 뭐래도 내가 내 밥 챙겨 먹고 나를 돌봐야지 내가 힘내야 힘을 얻는 세상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가 있으니.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고 이렇게 또 살아간다 힘을 내어 본다.


다들 식사는 하셨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쓸모에 대한 집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