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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복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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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Dec 26. 2023

쓸모에 대한 집착

남편이 승진을 했다.

본사의 지원부서에 있다가 힘든 현장으로 나가서

사람 상대하랴, 새로운 곳에 적응하랴 고생했고 승진 대상자들만 골프에 부르는 피곤한(?) 자리에도 참석해 가며

부단히 애를 쓴 결과라 생각하니, 꽤나 기특하고 멋지고 축하할 만한 일이다.

게다가 월급도 조금 오를 테니 가정의 경제생활에 아주 큰 공을 세운 것은 명명백백하다.

 

시댁에서 식사를 함께 하며 승진 이야기가 나왔다.

회사에 다닌 지 11년 만에 승진을 했다며 얼마나 고생했는지, 대견한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몇 년도에 입사를 했는지, 다른 동기들은 승진 상황이 어떤지,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속에 문득, ‘나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회사에 다니는데, 연차가 꽤나 오래되었는데 누군가 나에게도 물어봐 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나도 이렇게 회사를 오래 다녔고, 돈을 벌고 있고 나름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12월 12일은 내 입사 1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물론, 나는 임신과 출산으로 업무 공백이 있고, 우리 회사는 승진 적체가 심한 회사라서

마흔이 낼모레인데 대리 나부랭이인 것이 대외적으로는 부끄러울 때도 있으나 회사 안에서는 그럭저럭 버틸만하기도 하다.

그래도 나도 분명한 ‘승진 대상자’인데, 출산 후 복직한 사람들에게는 그 기회가 많이 돌아가지 않는 눈치다.

그것이 나는 좀 속이 많이 상한다

 

하다못해 팀장에게 잘 보이려면, 술 좋아하는 우리 팀장님 성격상

서글서글 술이라도 같이 마셔주며 분위기 맞춰주는 직원이 예뻐 보일 텐데

체질상 술을 잘 마시지 못할뿐더러, 그런 자리 어려워하는 성격이 나서 아예 그럴 시도 조차 하지 않았다.

업무도 더 완성도를 높이고 싶지만, 나는 얼른 퇴근을 해서 집에서 힘들에 아이를 돌봐주시는

엄마/어머님과 바통터치를 해드려야만 한다.

 

온전히 시간을 쏟아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미혼 직원들과는 어쩔 수 없는 갭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내가 사장이라도 미혼 직원들이 더 성과를 잘 낸다고 생각할 것이다.

올해 중간에 복직해서 안 된다는 그래도 위로할 만한 위로거리가 있다 치더라도 정말 내년에는 해야 하는데

과연? 하는 생각이 일을 하는 순간순간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나의 회사생활은 대리로 끝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회의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래서 승진을 한 남편이 부럽기도, 샘이 나기도 하고

그 끝에는 항상 작아진 내가 보인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몸의 변화를 경험하고

예전 같지 않은 몸의 부조화들을 느끼고 커리어 전반이 휘청 흔들리는 실로 큰 일임에 틀림없다.

제왕절개를 하러 들어가기 앞서서는 내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아주 짧게나마 느껴 보았고, 아이가 돌 전에는 수면부족에 호르몬 변화로 인생에 경험해보지 못한 나의 바닥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이가 조금 더 커서 두 돌을 앞둔 지금은, 전에 비하면 ‘양반’ 이 된 육아생활이지만 그 틈새로 어느새

나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 ‘나’라는 사람의 ‘쓸모’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자꾸 나의 ‘쓸모’를 검증하려 한다.

그런데 회사에서 유능한 직원으로 쓸모를 입증하고 싶은데 상황이 내 맘대로 돌아가지 않아 화가 나고,

와이프 혹은 그 이전에 여자로서의 쓸모를 인정받고 싶은데 남편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아서 슬프고,

그렇다면 엄마로서의 쓸모 하나는 자신 있지! 하고 싶은데 매번 부족한 엄마라 아이에게 미안한 죄인이 된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고, ‘뭐라도’ 해보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이 노력의 행보가 부디 좋은 결과로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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