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함을 인정하는 용기, 그리고 할머니가 보여준 진짜

아들아, 딸아, 내일의 너희에게 보내는 열아홉 번째 편지

by 하늘을 나는 백구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오늘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의 문제, 바로 '종교와 신앙'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살다 보면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거대한 벽 앞에 설 때가 있단다. 그때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고 절대자를 찾게 되지.


아빠는 종교가 단순히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겸손한 태도'이자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아빠가 생각하는 진짜 종교의 의미를 전해주마.


1. 할머니가 보여주신 '진짜 종교'의 모습


너희도 알다시피 아빠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너희 할머니, 즉 나의 어머니는 늘 절에 다니셨고 점을 보거나 부적 같은 민간 신앙에도 관심이 많으셨지.


그런데 내가 너희 엄마를 만나 교회를 다니겠다고 했을 때, 주변 친구들은 독실한 불교 집안의 장손인 네가 괜찮겠냐며 걱정했단다. 하지만 너희 할머니는 참으로 현명한 분이셨어. "네가 마음을 정했다면 그리하거라" 하시며 며느리와 아들의 종교를 기꺼이 존중해 주셨지.


사실 할머니에게도 사연이 있었단다. 아빠가 아주 어렸던 시절에 할머니는 교회를 다니셨어. 하지만 너희 할아버지께서 성경책을 태우겠다고 하실 정도로 교회를 싫어하셔서, 결국 다니는 걸 포기하고 절에 가기 시작하셨던 거야. 할머니에게 중요했던 건 기독교냐 불교냐 하는 교리가 아니라, 고단한 삶 속에서 마음을 의지할 '종교적 기댈 곳'이 필요하셨던 거지.


할머니는 1년에 12번도 넘는 제사를 지내면서, 그 없는 살림에도 정성을 다해 음식을 장만하고 꼭 이웃과 나눠 드셨단다. 그러던 분이 나중에는 나를 따라 다시 교회를 나가셨고, 집안 어른들이 돌아가신 뒤에는 그 많던 제사를 추도 예배로 바꾸셨어.


나는 너희 할머니가 보여주신 그 유연함과 존중이 바로 '진짜 종교'라고 생각한다. 형식이 아니라 정성을 다하는 마음, 자식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사랑, 그리고 삶의 의지처를 찾는 간절함. 너희도 이런 열린 마음으로 종교를 대했으면 좋겠구나.


2. 인간은 나약하다, 그러니 절대자에게 의지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젊을 때는 자신의 힘을 과신하기 쉽단다. "내 주먹을 믿지, 신이 어디 있어?"라고 호기롭게 말하기도 하지. 하지만 얘들아, 인간은 본질적으로 나약한 존재란다. 우리는 한 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고, 자연의 작은 변화에도 속수무책일 때가 많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절대자에게 의지하는 것은 결코 나약해서가 아니야.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용기'란다. 거대한 우주 앞에서 겸손하게 무릎 꿇을 줄 아는 사람만이 오만함에 빠지지 않고 삶을 진지하게 대할 수 있단다.


3. 신앙은 눈을 뜨게 하는 것이지, 눈을 멀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가 불교에서 기독교로, 제사에서 예배로 유연하게 변화하실 수 있었던 건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삶을 위한 믿음'을 가지셨기 때문이야.


믿음이 깊어지는 것과 '맹신'에 빠지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란다. 종교가 이성을 마비시키고, 합리적인 의심조차 죄악시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건강한 신앙은 너희에게 지혜를 주고 세상을 더 넓게 보게 하지만, 맹신은 너희에게 눈가리개를 씌우고 독선에 빠지게 만든단다.


4. 현실 없는 내세는 없다, 지금 발 디딘 곳에 충실해라


가끔 종교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현실을 도외시하고 오직 내세나 천국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더구나. 하지만 아빠는 단언컨대 현실에 충실하지 못한 신앙은 가짜라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제사를 지낼 때 정성을 다해 음식을 하고 이웃과 나누셨던 것처럼, 신앙은 실천이어야 한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너희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기도만 열심히 하는 것은 위선이다. 진짜 기도는 골방이 아니라 너희의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5. 기도의 힘을 믿어라


살면서 답답하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조용히 무릎 꿇고 기도해라. 거창한 형식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너희의 힘듦을 절대자에게 털어놓고, 지혜를 구하고, 감사함을 고백하렴.


기도는 신과의 대화이기도 하지만, 결국 너희 자신과의 깊은 대화이기도 하단다.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폭풍우 치던 마음이 고요해지고,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될 거야. 그때 비로소 문제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단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아.


너희 할머니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종교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에 있는 것이란다. 너희가 어떤 신앙을 갖든, 그것이 너희를 옭아매는 족쇄가 아니라 너희 삶을 지탱하는 든든한 뿌리가 되기를 바란다. 타인의 믿음을 존중하며, 현실에 충실한 건강한 신앙인이 되거라.

너희를 위해 늘 기도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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