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을 속이고 있었다
교단에 처음 섰던 신규 교사 시절, 나는 '연기'를 했다. 특히 모의고사를 치르는 날이면 나의 연기력은 절정에 달했다.
감독관으로 들어가 시험지를 나눠주고, 아이들이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를 내며 문제를 풀 때, 나도 뒷짐을 지고 아이들 사이를 거닐며 시험지를 훑어봤다. 쓱 문제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는 척을 했다. 마치 순식간에 정답을 파악한 고수의 여유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한 쇼였다.
사실 나는 교탁 밑에 숨겨둔 정답지를 미리 보고 외운 상태였다. 제한 시간 내에 그 긴 지문을 다 읽고 문제를 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나면 교무실 내 자리로 돌아와 해설지를 펴놓고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아이들이 질문하러 오기 전에, 원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설명해야 했으니까.
그때의 나는 선생이 아니라, 선생인 척하는 겁쟁이였다.
시간이 흘러 EBS 방송 강의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스스로 문제를 풀고 해설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답지에 의존하던 습관은 버렸지만, 여전히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바로 '시간'이었다.
정확하게 풀고, 오답의 근거를 찾고, 논리적으로 소거하다 보면 제한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나 있었다. '해설'을 위한 풀이는 완벽했지만, '시험'을 위한 풀이로는 빵점이었다.
그러다 수능 출제 현장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밀폐된 공간, 감도는 긴장감. 그곳에서 불쑥 과제가 떨어졌다.
자, 지금부터 실제 수험생과 똑같이 시간을 재고 풀어보세요.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당황스러웠다. 시계 초침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허겁지겁 지문을 읽었지만, 글자가 둥둥 떠다녔다. '종이 울리면 어떡하지? 내가 시간 안에 못 풀었다는 걸 들키면 어쩌지?'
종이 울렸다. 나는 다 풀지 못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로라하는 검토진 대부분이 시간 내에 문제를 완벽히 풀어내지 못했다. 개중에 딱 한 명만이 여유롭게 펜을 내려놓았을 뿐이다.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우리는 플레이어가 아니었구나.'
나는 아이들 앞에서 항상 내 실력을 자랑했다.
"이 문제는 이렇게 딱, 딱 보면 답이 나오지? 선생님처럼 풀어봐."
화려한 언변, 멋진 스킬, 막힘없는 판서. 하지만 그것은 내가 미리 시간을 들여 분석하고, 정리하고, 외워온 결과물이었다. 아이들이 겪는 그 촉박한 80분의 압박감 속에서, 나 역시 그들처럼 풀 수 있었을까?
유명하다는 일타 강사들은 다를까? 그들은 정말 라이브로, 아무런 준비 없이 그 시간 안에 모든 문제를 풀고 완벽한 강의까지 해낼 수 있을까? 감히 말하건대, 대부분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푸는 사람'이 아니라 '분석하는 사람'으로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100미터를 10초에 뛰지 못하면서, 10초에 뛰는 법을 이론으로만 가르치는 코치였던 셈이다. 그러면서 "나처럼 뛰면 돼"라고 말했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는 아이들을 속이고 있었고, 나 자신마저 속이고 있었다.
이제 나는 아이들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슈퍼맨의 망토를 벗고, 현실을 이야기하려 한다.
얘들아, 선생님이 지금 해설하는 것과
너희가 시험장에서 푸는 건 완전히 다른 거야.
문제를 푼다는 건 흙탕물 속에서 진주를 건져 올리는 치열한 싸움이고, 해설한다는 건 맑은 물에 씻겨진 진주를 보여주며 감탄하는 일이다. 나는 그동안 흙탕물의 고통은 모른 척하고, 깨끗한 진주만 보여주며 너희를 다그쳤다.
나의 다섯 번째 오답노트에는 이렇게 적는다. "문제를 해설하는 능력으로, 문제를 잘 푼다고 착각하지 말 것."
이 사실을 인정한 순간부터, 나는 비로소 아이들에게 '푸는 법'을 같이 고민해 주는 진짜 선생님이 될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