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이라는 이름의 거짓말
대학 사범대에서는 교육학 이론을 가르쳐주었지만, 정작 강단에서 어떻게 말을 해야 아이들이 귀를 기울이는지, 좋은 문제는 어떻게 출제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신규 교사 시절, 나는 일종의 '도둑 공부'를 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자습서와 참고서 서너 권을 펼쳐놓고, 그 내용을 짜깁기해 노트에 필기하고 달달 외웠다. 아마 지금도 많은 젊은 강사들이 유명 인강 강사의 강의를 듣고 필기하거나,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를 편집해 자신만의 교재인 양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을 것이다.
그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확신'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내용이 진리여야만 했다. 그래야 아이들 앞에서 떨지 않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책에 적힌 활자들을 맹목적으로 믿기로 했다. '참고서에 나온 거니 당연히 옳은 이야기겠지.'
그 맹목적인 믿음이 깨진 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직접 교과서와 참고서를 집필하면서부터였다.
집필자가 되어 보니 알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신봉했던 '정답'들의 실체를. 물론 논문을 찾고 검증된 자료를 바탕으로 쓰지만, 행간을 메우는 건 결국 집필자의 '추론'과 '주관적 해석'이었다.
"이 시의 화자는 이런 상황이니, 아마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내가 쓴 이 문장은 나의 해석일 뿐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책이 출판되자 수많은 선생님이 내 생각을 마치 불변의 법칙인 양 가져다 수업하고, 심지어 그것을 바탕으로 문제를 출제하고 있었다.
섬찟했다. 내가 과거에 믿었던 그 수많은 지식도, 결국 누군가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편향된 추론이었을 수 있겠구나. 나는 그것을 검증 없이 받아들여 아이들에게 '정답'이라고 강요해 왔던 것이다.
우리는 수업을, 그리고 상담을 너무나 '확증편향적'으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믿고 있는 내용,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여 아이들에게 주입한다.
"이건 이게 맞아. 토 달지 말고 외워."
그 확신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저 남들이 다 그렇게 말하니까? 책에 그렇게 나와 있으니까?
오늘도 옆 자리 상담실에서 젊은 강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A대는 상향이고, B대는 하향이니까 일단 B를 '가'군에 박아두고, 나머지는 질러버려도 돼. 내 말 믿고 따라와."
그 목소리엔 망설임이 없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전략일까, 아니면 '질러보다 터지면 대박'이라는 식의 도박일까. 문득 묻고 싶어졌다.
"선생님, 그 기준과 확신, 선생님의 자녀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까?"
아마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남의 아이 인생이라서 쉽게 던지는 '확신'은 아닌지, 자신의 편향된 경험을 일반화하여 '전략'으로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여섯 번째 오답노트를 적으며 나는 다시 한번 나를 의심한다. 내가 오늘 수업 시간에 강조한 내용은 진짜 팩트인가, 아니면 나의 편견인가. 나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길러주고 있는가, 아니면 내 색안경을 씌워주고 있는가.
가르치는 자의 확신은 때로 무지가 빚어낸 오만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끊임없이 흔들리고,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