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딸아, 내일의 너희에게 보내는 스물세 번째 편지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오늘은 너희가 지금 겪고 있는 시간, 그리고 앞으로 마주하게 될 '시간의 속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과학적으로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1초, 1분, 1시간씩 흐르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은 나이마다, 상황마다 전혀 다른 속도로 흐르더구나. 아빠가 지나온 인생의 시곗바늘을 되돌려보며, 너희가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이야기해 주마.
너희도 겪어봐서 알겠지만, 10대 시절 시간은 참 안 가더라. 특히 고등학교 교실에 갇혀 입시 전쟁을 치르던 수험생 시절은 하루가 1년 같았어. 그때는 '지난 시간'은 쏜살같이 빠른데, '견뎌야 할 시간'은 왜 그리 더딘지. 늘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빨리 대학생이 되어서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지.
20대 초반은 고통과 불안의 연속이었어. 군 생활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기만 했고, 졸업 후 취업 문턱을 넘을 때까지 시간은 무겁게 짓눌려 흐르지 않았단다.
특히 20대 후반, IMF 사태를 정통으로 맞으면서 아빠의 시간은 지옥 같았어. 가족을 위해 섰던 보증이 문제가 되면서 빚더미에 올랐을 때, 나는 매일 밤 기도했단다. "눈 감고 일어나면 60대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다 건너뛰고, 차라리 늙어버린 뒤 편안해지기를 바랄 만큼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지? 그렇게 시간이 안 가던 20대를 지나 30대가 되니, 시간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더구나. 빚을 갚기 위해 이리저리 뛰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더니 10년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 기분이었어.
결국 돈도 갚고 목표는 이뤘지만, 40대를 코앞에 둔 서른아홉의 나는 무척이나 허무했단다. "내 청춘이 빚 갚다가 다 지나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뻥 뚫린 것 같았지.
40대는 내 인생의 황금기이자 또 다른 고통의 시기였어. 새로 시작한 학원 강사 생활은 적성에 딱 맞아 정말 행복했지만, 몸은 늘 피곤했지. 그러다 친구의 부탁으로 맡았던 학원이 사기를 당하고 소송전에 휘말리면서 제2의 고난이 시작되었어.
행복해서 바쁘든, 괴로워서 바쁘든, 40대의 시간은 30대보다 훨씬 더 빨리 흐르더구나.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머리에 희끗희끗한 눈이 내리고 있었어.
그리고 지금 50대. 정말로 눈을 한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벌써 50대 중반을 지나고 있단다. 이제는 계절이 바뀌는 게 무서울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
재미있는 건 나이에 따른 거리감이 달라진다는 거야. 내가 10살 때 20살 형들은 거인처럼 큰 어른 같았어. 내가 20살 때 30살 형들은 그래도 꽤 가까운 선배 느낌이었지. 내가 40살이 되니 50살은 그냥 동년배 친구처럼 느껴지더구나. 그런데 만약 내가 60살이 되었을 때 바라보는 70살은 어떨까? 아마 그때는 '삶을 정리해야 하는 동지'로서 참 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 같구나.
사랑하는 아들과 딸아.
결국 시간은 물리적으로는 균등하게 흐르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질감과 속도로 흐른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고통스러울 때는 영원할 것 같던 시간이, 치열하게 살 때는 찰나처럼 지나가고, 멍하니 있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이제 막 20대를 보내고 있는 너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지금 너희가 보내는 20대의 시간은, 앞으로 너희가 맞이할 '30대의 풍경'을 결정하는 시간이란다. 막연히 시간이 안 간다고 불평하거나, 불안해하며 숨기만 한다면 너희의 30대는 더 가혹한 속도로 너희를 몰아붙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을 밀도 있게 채워나가렴. 그래야 훗날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 버렸다고 한탄하지 않고, 그 시간 속에 새겨진 너희의 발자국을 보며 웃을 수 있을 테니까.
너희의 소중한 젊음이 아름답게 채워지길 기도하며,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