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딸아, 내일의 너희에게 보내는 스물두 번째 편지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오늘은 조금 부끄럽고도 신기한 고백을 하려 한다. 너희도 알다시피 아빠는 젊은 시절, 너희 할아버지의 많은 행동을 싫어했단다. 툭하면 잔소리를 했고, 할아버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하기도 했지. "나는 절대로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수없이 다짐했었어.
그런데 참으로 얄궂은 일이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내 행동과 말투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니 말이야. 어느 날 너희가 나에게 무심코 던지는 말투에서 내 과거의 모습을 보았고, 거울 속의 나에게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단다.
그런데 얘들아, 그 순간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 아니었어. 오히려 '아, 아버지도 그때 그래서 그러셨구나' 하는 늦은 이해와 먹먹함이었지. 아빠가 닮아가는, 그리고 이제야 이해하게 된 할아버지의 모습들을 들려주마.
너희도 가끔 봤지? 아빠가 밥을 급하게 먹다 사레가 들려 얼굴이 벌게지도록 기침을 참는 모습 말이야. 음식을 뱉거나 물을 마시면 될 텐데, 굳이 꾸역꾸역 다른 음식을 밀어 넣으며 아무 일도 아닌 척하곤 했지. 그건 '내가 아직 건재하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는 일종의 객기이자 무안함을 감추려는 몸부림이었어.
그런데 옛날 너희 할아버지가 딱 그러셨단다. 식사하다 사레가 들려 거의 기절할 듯 기침을 하시면서도 멈추지 않고 숟가락을 드셨지. 그때 나는 "조심 좀 하시지 왜 그러냐"며 짜증을 내고 화를 냈었어. 그런데 내가 그 나이가 되어 똑같이 행동해 보니 알겠더구나. 그건 고집이 아니라, 자식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아버지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는 것을. 그때 등 한번 제대로 두드려 드리지 못한 게 참 후회된다.
재활용 날만 되면 아빠가 유난을 떨며 쓰레기를 정리해서 나가는 걸 알 거야. 끊임없이 나오는 재활용품을 보며 '이걸 빨리 치워야 해'라는 강박에 시달리곤 하지.
문득 너희 할아버지가 떠오르더구나. 할아버지는 유난히 재활용품에 집착하셨어. 나는 할아버지가 경비 일을 하셔서 직업병 때문에 그런 거라고 무시하곤 했지. "집에서까지 왜 이러시냐"라고 핀잔도 줬었어.
하지만 지금 내가 해보니 알겠다. 그건 직업 때문이 아니라, 가장으로서 집안을 깨끗하고 질서 있게 유지하고 싶었던, 일종의 책임감이자 강박이었던 거야. 좁은 집에서 식구들이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을, 그때는 왜 촌스러운 행동으로만 치부했는지 모르겠구나.
너희도 알다시피 아빠는 술을 잘 못 마신다. 하지만 요즘은 가끔 저녁에 쓴 소주 한 잔이 간절하게 생각날 때가 있어.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털어 넣는 그 쓴맛이, 오히려 마음을 위로해 줄 때가 있더구나.
할아버지는 술 때문에 가족들을 참 많이 힘들게 하셨지. 나는 그런 할아버지가 너무 싫어서 술 드신 날이면 화를 내고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어. 하지만 가장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보니,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할아버지에게 술은 단순한 유흥이 아니라, 맨 정신으로는 버티기 힘들었던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눈물 같은 약'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 외로웠을 술상 앞에 말벗이라도 되어 드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아.
부모와 자식은 결국 시간을 두고 서로를 비추는 거울인 것 같구나. 나는 아버지를 닮아가는 내 모습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를 용서하고 이해하게 되었단다.
언젠가 너희도 너희 자식을 키우며, 지금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문득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될 날이 올 거야. 그때 너희가 "아, 우리 아빠가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준다면, 아빠는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닮아가며, 서로의 인생을 이해해 가는 거란다.
너희를 통해 나의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