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오답노트 #8]

숫자에 대한 믿음과 허상

by 하늘을 나는 백구


내신 평균 2.5면 여기는 절대 안 돼요!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이렇게 단정 짓는다면, 그 사람을 절대 신뢰하지 마라. 그는 입시 전문가가 아니라, 그저 모니터 화면을 읽어주는 '리더(Reader)'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내뱉는 신탁


대입 시즌이 되면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컨설팅을 받으러 다닌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상담실 풍경은 대개 비슷하다. 책상 위에는 화려한 입시 프로그램이 띄워져 있다. 상담가는 학생의 성적을 입력하고, 클릭 몇 번으로 결과를 보여준다.


"자, 보세요. 작년 합격 컷이 2.3인데 학생은 2.5죠? 빨간불 떴네요. 여긴 안 됩니다. 대신 여기 파란불 뜬 대학들은 안전합니다."


학부모들은 그 숫자를 마치 신탁처럼 받아들인다. 프로그램이 '안 된다'라고 하면 세상이 무너진 듯 포기하고, '된다'라고 하면 안도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 정도 이야기는 굳이 비싼 돈 주고 컨설팅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숫자만 읽어 내려가는 상담은 입시를 모르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입시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입시는 고정된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매년 꿈틀거리는 생물과 같다. 진정한 전문가는 모니터 속의 숫자가 아니라, 그해의 변동 요소를 읽는다.


올해를 예로 들어보자. 의대 정원이 대폭 늘어났고, 무전공 선발이 확대되었다. 게다가 '불수능'이라 불릴 만큼 어려웠던 시험 난이도 때문에 수험생들의 지원 심리는 잔뜩 위축되어 있다. 이런 복합적인 상황에서 작년 입시 결과(숫자)를 그대로 대입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경험이 부족한 젊은 컨설턴트나, 자기 자식을 대학에 보내보지 못한 이론가들은 이 '맥락'을 놓치기 쉽다. 그들은 데이터의 노예가 되어, "작년에 안 됐으니 올해도 안 된다"는 단순한 논리에 갇힌다. 하지만 입시의 판은 아이들의 지원 성향과 학부모의 니즈, 그리고 사회적 이슈가 뒤엉켜 매번 새로운 그림을 그려낸다.


숫자가 보여주지 않는 것들


수시 모집을 보자. 내신 2.5라는 숫자는 결괏값일 뿐이다. 그 숫자 뒤에는 생활기록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이라는 정성적인 스토리가 숨어 있다. 숫자는 조금 부족해도 전공 적합성이 뚜렷하거나, 남다른 탐구 역량이 기록되어 있다면 학종(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 혹은 논술 전형이라는 또 다른 카드가 존재할 수도 있다.


정시 모집 또한 마찬가지다. 단순히 표준점수 합산만 볼 것이 아니라, 지원 군(가/나/다군)의 이동 흐름과 경쟁률의 추이를 읽어야 한다.


제시된 숫자만 가지고 아이들의 가능성을 "된다/안 된다"로 난도질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것은 컨설팅이 아니라 통보에 불과하다.


나 또한 숫자를 읊는 앵무새였다


여덟 번째 오답노트를 적으며, 나 역시 부끄러운 과거를 마주한다. 초임 교사 시절, 나도 그랬다. 입시 지도의 경험이 일천했기에 믿을 건 오직 배치표의 숫자뿐이었다.


"너는 점수가 3점이 모자라네. 여긴 지원 못 해."


아이의 눈빛 속에 담긴 간절함이나, 그 아이가 가진 잠재력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 눈앞의 숫자가 법이고 진리인 양 읊어댔다. 안전하게 합격시키는 것이 유능함이라 착각하며, 수많은 '가능성'을 내 손으로 잘라냈던 것이다.


숫자는 참고 자료일 뿐, 결코 정답지가 될 수 없다. 입시는 숫자 너머의 사람을, 그리고 변화하는 세상을 읽어내는 일이어야 했다.


오늘도 모니터 앞에서 숫자 놀음에 빠져 있을 누군가에게, 그리고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 숫자가, 학생의 인생을 다 설명할 순 없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선생님의 오답노트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