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주는 자와 가르치는 자
"쌤, 진짜요? 와, 대박 웃겨!"
"그렇다니까. 내가 그때 딱 돌아서서 뭐라고 했냐면..."
와하하. 교무실이 떠나갈 듯 웃음소리가 터진다. 선생님과 학생이 머리를 맞대고 시시콜콜한 연예인 이야기나 어젯밤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모습은 사제지간이라기보다, 쉬는 시간의 친구들처럼 허물없어 보인다.
보기 좋은 풍경이다. 소통이 잘 되는 선생님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나는 문득 서늘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지금 저 선생님은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가, 아니면 학생과 '놀아주고' 있는가?
요즘 아이들은 외롭다. 외동인 경우가 많아 가정에서 온전한 관심을 독차지하며 자랐지만, 역설적으로 그 관심을 끊임없이 갈구한다. 게다가 문해력이 낮아지면서 진득하게 앉아 글을 읽거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힘겨워한다.
이런 성향이 학업에 대한 열의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아이는 학원이나 학교에서 자신과 코드가 맞는 '놀이 친구'를 찾는다.
"우리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재밌는 썰(이야기)을 많이 풀어줘서 좋아."
아이들이 말하는 '좋은 선생님'의 기준은 점점 '재미'와 '친밀함'으로 기울고 있다. 그래서일까. 소위 인기 있다는 인터넷 강의를 보면 50분 수업 중에 10분, 20분을 자신의 인생사나 유머, 잡담으로 채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이들은 그 '잡소리'를 듣기 위해 강의를 결제하고, 그 강사를 찬양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무실 풍경도 달라졌다. 아이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이끌어주려는 선생님은 본능적으로 피한다. 진지한 상담이나 훈육은 '꼰대질'이나 '잔소리'로 치부해 버린다. 대신, 친구처럼 어깨동무하고 농담 따먹기(?)를 해주는 선생님 앞에는 줄을 선다.
나 또한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아이들과 마주 앉아 영양가 없는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 늘고 있었다. 수업 내용이나 태도에 대해 따끔하게 조언하고 싶다가도, 아이의 표정이 굳어지는 게 싫어서, "선생님, 진지충!"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슬그머니 농담으로 넘겨버리곤 했다.
아이들의 비위를 맞추며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타협하는 동안, 나는 선생이 아니라 '나이 많은 친구' 쯤으로 전락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물론 아이들과의 라포 형성은 중요하다. 적절한 유머와 사담은 지친 아이들에게 활력을 주는 훌륭한 동기부여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단이어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 나의 오답노트에 굵은 펜으로 적는다.
"놀아주는 자가 되지 말고, 가르치는 자가 되자."
아이들이 당장 듣고 싶어 하는 달콤한 농담보다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쓴 약 같은 배움을 주는 사람. 친구처럼 편한 존재보다는, 조금 어렵더라도 인생의 방향을 물어볼 수 있는 어른.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취해 나의 본분을 잊지 말자. 나는 그들의 친구가 아니라, 그들이 넘어야 할 산을 먼저 올라가 손을 내밀어 주는 가이드여야 한다. 조금은 고독하고 재미없더라도, 그것이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