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아들아, 딸아, 내일의 너희에게 보내는 서른아홉 번째 편지

by 하늘을 나는 백구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오늘은 아빠가 학원에 잠시 들렀다가 느낀, 조금은 쓸쓸하지만 아주 중요한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해 주려 한다.

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학원은 어땠을까? 놀랍게도, 아니 다행스럽게도 학원은 아무 문제 없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더구나. 아이들은 공부하고, 선생님들은 강의하고, 상담실 전화벨은 울리고... 내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큰일이 날 것 같았던 그곳은, 나의 부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1.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


젊은 시절, 아빠는 종종 이런 착각을 했단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내가 빠지면 당장이라도 무슨 사달이 날 거라고, 내가 그만큼 절대적인 존재라고 말이야. 그래서 아파도 쉬지 못했고, 그만두고 싶어도 '나 때문에 남을 사람들'을 걱정하며 주저하곤 했지.

하지만 얘들아, 살아보니 진실은 냉정하더구나. 세상은 나 없이도 기가 막히게 잘 돌아간다. 내가 빠진 자리는 누군가가 금세 채우고, 조직은 시스템에 의해 굴러가며, 지구는 여전히 태양 주위를 돌지.

이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는 묘한 배신감과 허무함이 들기도 했어. '내 존재가 고작 이 정도였나?' 하고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2. 실망하지 마라, 가벼워져라


나 없이도 세상이 잘 돌아간다는 사실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아, 세상이 내 어깨 위에 얹혀 있는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지지 않니?

내가 없어도 세상이 돌아가기에, 나는 아플 때 쉴 수 있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떠날 수 있으며, 가끔은 게으름을 피울 수도 있는 거란다. 나의 부재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해 준다.


3. 태양도 은하계의 변방일 뿐이다


우리는 흔히 태양을 태양계의 절대적인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맞다.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도니까. 하지만 시야를 조금만 넓혀 우리 은하 전체를 보면 어떨까?

그 거대한 태양조차도 우리 은하의 나선팔 끝자락에 있는, 수천억 개의 별 중 하나인 조그만 '누런 별'에 불과하단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태양도 그저 거대한 흐름 속의 작은 점일 뿐이지.

세상은 늘 그렇게 움직인다. 중심인 듯하다가도 변방이고, 변방인 듯하다가도 누군가의 중심이 되는 것. 그러니 내 삶에 지나치게 크고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는 없다.


4. 함께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기쁨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 의미 없는 존재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세상은 나 없이도 돌아가지만, 나는 지금 그 돌아가는 세상 속 한가운데서 숨 쉬고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세상의 중심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내가 이 거대한 세상의 흐름 속에 다른 존재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야. 톱니바퀴 하나가 빠져도 기계는 돌아가겠지만, 그 톱니바퀴가 제자리에 끼워져 함께 맞물려 돌아갈 때 기계는 더 힘차게,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법이란다.


마치며

사랑하는 아들과 딸아.

너희가 없어도 세상은 내일의 태양을 띄울 것이다. 하지만 너희가 그 태양 아래서 땀 흘리고, 사랑하고, 웃으며 살아간다면 세상은 분명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근사해질 거야.

나의 부재를 두려워하지 말고, 나의 존재를 과시하지도 말고, 그저 오늘 하루 내 곁의 사람들과 발맞추어 함께 돌아가는 기쁨을 누리거라.


세상이라는 거대한 춤판에서, 너희와 함께 춤출 수 있어 행복한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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