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업유산 답사기(프롤로그)

나는 그렇게 마흔에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by 반향

나는 2022년 올해 마흔 살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평균 나이가 43.9세라고 하니 마흔이라는 나이가 아직 인생의 평균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공자님께서는 마흔이라는 나이가 불혹(不惑)이라는 그럴듯한 네이밍도 해 주신 나이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는 이런 마흔의 나이까지 내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구체적으로 직업 선택 분야에 있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개략적으로 나마 기록을 남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조금은 특이한 직업유산이 있기 때문이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나와 동일한 직업 경험을 한 사람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는 못 만나볼 것 같다. 나는 빙빙빙 돌아 지금의 시작점의 위치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지방 소도시 출신으로 나름 성실히 공부하여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직업 방랑의 시작이 대학에 발걸음을 디딛을 때부터였다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하였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취직이 잘 되고 돈을 벌 수 있는 과에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변의 권유에 따라 이과를 선택하였고 그 중 취직이 잘 된다는 공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공대를 다니는 4년 동안 정말 힘들었다. 물론 공대 공부가 보통의 사람들에게 대부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대학에 진학해서야 내가 철저한 문과 체질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중간에 전공을 포기하거나 바꾸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취직하기만 기다리시는 가족의 기대를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물 없이 맨밥만 삼키는 심정으로 대학 4년을 꾸역꾸역 보냈다. 하지만 이러한 중에도 그동안 배운 것이 아깝고 먹고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능하면 전공과 관련이 적은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심은 이후의 나의 직업생활의 방향을 제시해주었고 마흔이 된 지금의 나를 지금도 먹고 살게 해주고 있다.


나의 첫 번째 직장은 공기업이었다. 나의 능력에 비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전공 관련 공기업에 취직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대학 전공이 어려워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사기업에서는 나를 불러주는 곳이 많지 않았지만 오히려 공기업에서는 나를 안타깝게 여겨서인지 받아 주었고 주변에서 부러워 할 만한 쾌조의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때 내 나이 27세였다. 하지만 나의 첫 번째 직장이 두 번째 직장으로 바뀌는 데는 3년여의 기간만이 필요하였다.


나의 두 번째 직장은 국가직 공무원이었다. 공기업에 다니던 중 사기업에 비하면 비교적 갑의 위치였지만 공무원에게는 늘 을이었던 나는 공무원에 대한 비합리적인 동경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동경으로 인해 말단 공무원으로 이직을 해버리게 되었다. 내가 공기업에 회의를 느낄 때 경력직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시험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 시험에 덜컥 합격해 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의 두 번째 직장이 세 번째 직장으로 바뀌는 데는 2년여의 기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나의 세 번째 직장은 지방직 공무원이었다. 막상 국가직 공무원이 되어 보니 공기업에 비해 급여가 현저히 낮았다. 물론 원하던 대로 공무원이 되어 기분이 우쭐하기도 하였지만 통장의 잔고를 볼 때마다 어깨가 움추려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불만이었던 것은 국가직공무원은 전국 순환근무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상황이어서 지금보다는 훨씬 가정적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내가 평생 주말부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 곳에 정착해서 살 수 있는 지방직 공무원으로 전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고 마침내 지방직 공무원으로 전출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세 번째 직장인 지방직 공무원을 약 8년간 다니게 되었다.


지방직 공무원으로서의 삶도 만만치 않았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나는 아이가 둘이 되었고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생활에 안주하며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 스스로 합리화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나이가 먹어 갈수록 마음 속에서 갈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릴 적 꿈이 자꾸 우물처럼 솟아났다. 그러던 중 우연히 주호민 작가의 무한동력이라는 웹툰을 보게 되었는데 만화 중에 이런 대사를 보았다.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 나는 가슴이 뛰었다. 몇 일을 끙끙대다가 결국 와이프와 상의하였다. 와이프는 이러한 나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는 도전해보라는 허락을 해 주었고 나는 어릴적 꿈이었던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를 시작하였다. 임용고시를 응시하기 위해서는 교사자격증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낮에는 직장 생활을 하고 밤에는 야간 대학원을 2년 6개월 다녔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시험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한 그 해에 바로 임용고시를 보았고 다행히 마흔 살의 나이에 한번에 시험에 합격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임용고사에 최종합격하여 3월부터 시작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다. 어떤 이들은 20대 초반의 나이에 교사가 되기도 하지만 나는 돌고 돌아 마흔의 나이에 이들과 같이 다시 출발을 한다. 하지만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해 해주고 응원해 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나는 마흔이 되어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게 된 것 같다. 방향은 설정하였으니 이제부터는 꾸준하게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나의 그간의 다양하고 특이한 직업유산 답사가 앞으로 만날 새싹같은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거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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