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 Jul 16. 2022

03 평범함은 쉽게 소화되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 깨달았다. 아, 나는 정말 숨 막히게 평범한 인간이다. 어쩌면 이렇게 대단치 않은 사람인지 좀 놀라운 정도였다. 이 정도의 재능밖에 주지 않다니 약이 오른다. 희망 고문이라고나 할까. 눈에는 안 띄지만, 일반인보다는 감각 있는 정도의 미지근한 재능. 예체능에서 재능의 영역은 무시할 수 없고, 사실 어떤 일을 해도 재능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보인다. 그 와중에 나는 정말 중간 정도의 인간인 것이다.




꿈을 크게 가지라거나 하는 말을 어릴 때는 참 많이 듣는다. 한 유치원에서 초등학교까지는 그렇다.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도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뛰어난 사람, 위대한 사람, 주목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학교를 다니는 내내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적당히 공부 잘하는 조용한 애였다. 크게 떨어지는 구석은 없고 반의 중심에 속하지 않는 딱 그 정도. 그렇다 보니 별로 큰 꿈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환경 탓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자랐다는 것이 맞다. 큰 꿈이 없어도 먹고 산다. 단지 내 꿈을 이루는 것과 별개로 창작의 영역에서 끝없이 목이 마르니 나의 평범함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는 말이다. 내가 날 위해 그림을 그렸는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친구에게도 그런 말을 했다. 나는 가끔 내가 너무 평범한 게 숨이 막힐 때가 있어. 친구는 격하게 동의했다. 전공과는 상관없지만, 그 친구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잘한다. 그런데 적당히 잘한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진지한 취미, 그리고 기회만 있다면 직업으로도 삼고 싶은 글쓰기의 재능이 미미하다는 것.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데 도대체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이었다. 기술적으로 크게 떨어지지 않지만, 창작물은 그 정도로 완성되지 않는다. 반짝이는 조미료가 더해져야 하는데 그게 내 안에는 없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 건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니 조언을 구할 수도 없다. 선천적인 요소가 인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결국 99%의 노력보다 1%의 재능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있다는 걸 어떻게 모르겠는가.


재능의 면에서도 그렇지만, 삶 자체가 그저 그렇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나만 아무 일 없이 사는 것 같아서였다. 다들 바쁘고 재미있어 보이는데 나는 방에 틀어박혀 혼자 있기만 하니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인 일주일이 지나면 한 달도 그렇게 지나간다. 과제를 하고 개인 작업을 하고 남의 작업을 소비하며 일상이 굴러간다. 사실상 몸을 움직인 활동은 없이 하루의 모든 일이 머릿속에서 일어난 것 같다고나 할까?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 정도로 급격히 지루해지지만, 어차피 내 잘못이니 불평은 할 수 없다. 다들 알아서 즐길 거리를 찾아 새로운 일을 하니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겠지. 점점 예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고작 몇 년 전인데도. 나는 주인공의 먼 친구처럼, 흐리고 단순한 감상으로 치부될만한 삶을 살고 있다.


나의 평범함은 재능의 문제가 그렇게 중심은 아니다. 나의 재능 없음은 오래전에 받아들인 부분이고, 크게 괴롭지 않다. 이제는 삶이 그냥 흘러가기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의 일상을 낭만적인 렌즈로 보는 사람들은 이를 기록한다. 어제와 오늘은 이렇게 다르구나. 내일도 다른 날이 찾아오겠지. 내가 줄곧 일기 쓰기를 실패한 원인은 어제와 오늘의 감상도 사건도 지극히 비슷하기 때문이다. 결국 쓰는 것이라고는 내일은 이걸 완성할 계획이다, 아니면 이런 부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같은 자기비판적 내용뿐이라 다시 읽어도 재미가 없다. 쓰는 것도 의무감에 한 달 정도 쓰고는 그만둬버린다. 기록의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걸 써서 뭐 하지? 매일이 특별한 사람들은 단순히 다른 관점을 가진 것인지, 아니면 하루하루가 다르도록 신경을 쓰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동시에 나만 어떤 일, 혹은 사건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가는 곳에 가지 못하고 먹는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소외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거대한 맥락 안에 포함되지 못한 주변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무슨 소리냐고? 어떤 의미도 영향력도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알게 된다는 말이다. 나는 이 세상에 대단함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태어남과 죽음에는 아무 의미도 없고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겠지. 하지만 다들 어떤 내재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 보인다. 그런 것을 부정하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인생의 의미와 존재 이유를 알고 싶을 때가 있다. 동시에 그런 것은 없으며 그걸 만들지 않아도 삶은 지속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할까 봐 나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소소하게 불행해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불평하기에도 사소하다. 이런 마음 정도는 다들 무시하면서 사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02 어쩌면 이렇게 망할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