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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Jul 13. 2022

02 어쩌면 이렇게 망할지도 모른다




졸업을 한 학기 남긴 대학생에게는 보편적 고민 하나가 있다. 과연 내가 돈을 주고 고용할 만한 사람인가? 답은 당연히 아니다. 대학은 취직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서 학생들은 대외활동에 참여해 이른바 ‘스펙’을 쌓는다. 취업 시장에서 더 돋보이기 위해서이다. 대외활동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크게 자랑할 만한 것은 없다. 내 이력서는 텅 빌 예정이다. 물론 내 잘못이지만, 그렇다는 것이다.


내보일 것이 없다면 내가 뭘 했던 논 것이 된다. 생산과 창작을 하지 않으면 죄책감에 잠도 못 자는 내가 그냥 시간 낭비만 한 백수로 분류되는 것이다. 내 나름의 노력이야 의미도 없고, 결과를 보여야 하니까. 초중고 12년 내내, 나는 그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 결과가 따라주지 않으면 노력한 것이 아니다. 노력해 나온 결과가 아니라면 진짜 실력이 아니다. 너는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 이건 문제가 될 것이고 너의 뒤통수를 칠 것이다. 그대로 대학교 신입생이 되었고, 불안해 도전하지도 못하고 불안해 그만두지도 못하는 인간으로 자랐다. 나는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 지금껏 운이 좋아 살아남은 인간이 분명했다. 언젠가는 모두가 이 사실을 알게 될 것 같았다. 내가 사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고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인데 잘 숨겨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성적은 계속 잘 받았지만, 대학에서 성적이 무슨 소용이랴. 그것도 미술대학에서.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지만, 휴학 한번 하지 못하고 그대로 학교를 졸업할 예정이다.




입시 스트레스가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괴롭힐 것이라고 생각은 못 했다. 대학에 와서 시험이나 성적에 대한 두려움은 가셨지만,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대학생이 된 후의 첫 방학,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몰려온 불안에 일어나 앉아야 했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는데 하지 않은 것 같다는 비이성적인 공포였다. 방학 이후 적어도 일주일은 불안에 잠을 설쳤다. 그건 첫 방학뿐만이 아니었다. 학교라는 장소 자체가 나에게는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다. 학교에만 가면 긴장이 되어 손발이 차가워지고 배가 고프지도 목이 마르지도 않았다. 너무 춥고 근육이 굳어서 몸이 사정없이 떨리는 경우도 많았다. 손을 떠는 건 기본이고 최대한 빨리 집으로 향하기 위해 수업이 끝나자마자 술자리도 참석하지 않고 떠났다. 신입생 때 동기들은 나에게 술을 마시자는 권유도 하지 않았다. 언니는 그런 거 싫어해, 가 통용되는 상식이었다. 미대의 분위기상 문제가 될 일이 아니어서 자연스럽게 술자리에 관심 없는 친구들과 놀았을 뿐이다.


‘언니’가 된 이유는 재수가 아니었다. 인생의 최저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학교 2학년, 나는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일 년을 보냈다. 아버지의 일 때문이었다. 그때는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급락하기 시작한 성적 때문에 정신적으로 위태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부모님에게 혼이 나는 것보다 죽는 것이 좋아 보였다. 극심한 자기혐오와 자신감 하락으로 사람이 무섭기 시작했다. 다들 나를 비웃을 것만 같은, 그런 망상이 점점 심해졌다.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 두려워졌다. 매일 아침, 교복을 입고 학교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어찌나 고역이었는지. 집 앞의 버스 정류장에 모이는 사람들을 피하려 항상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학교 복도도 무서워 반 밖으로 거의 나가지도 않았다. 그 모든 것에서 도망칠 기회가 극적으로 주어졌기에 망정이지, 그게 없었다면 나는 그대로 침몰했을 것이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운이 좋아 내 인생이 변한 것 말이다.


부모님은 지금도 이야기한다. 너 그때 안 갔으면 대학도 못 갔을 거야,라고. 맞다. 나는 그대로 한국에 있었다가는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적은 더 떨어졌을 것이고 고등학교를 위한 기본조차 제대로 없이 고입, 대입을 치렀겠지. 문제는 그것이다. 나는 내가 운이 좋아 성공한 인간이라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없다. 어떤 일들은 노력의 여부와 상관없이 일어나 우리에게 선뜻 기회를 준다. 그걸 하나둘 깨닫기 시작하면 점점 불안해진다. 다음의 ‘운’이 언제 올지 알 수 없으니까. 어떤 변곡점도 없이 내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걸까? 뭘 어떻게 해야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거지?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아리송하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에도 이런 ‘운’의 요소가 많이 자리하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인물을 만나거나, 우연한 기회가 주어지거나, 정말 성공은 생각도 못 하고 한 일이 시대와 맞아떨어지거나 하는. 일견 행운으로만 보이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들의 삶이 변화한다. 이들은 그런 변곡점의 존재를 알면서도 이를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저 살다 보면 주어지는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기다리며 갈고닦는 시간 자체가 너무도 두렵다. 다음의 변곡점이 오기나 할는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당연히 모른다. 아직 인생의 중간까지도 가지 않았으니 뭐 아는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갈 길은 멀고 이제는 정말 세상에서 내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만 같은데, 손에 쥔 것이 없다. 


이렇게 ‘망한 인생’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꽤 근거 있는 불안이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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