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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Jul 11. 2022

01 깜짝 놀랄 정도로 의욕이 없다




조금 이를지도 모르겠지만, 인생이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것 같다. 한국 나이로 25살. 대학교 5학년.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겨둔 미대생. 숨이 막히는 조합이다. 백수를 만들기에 완벽한 재료다. 환경도 갖춰져 있다. 이를 타개할 방법을 한 학기 만에 고안하기엔.. 앞이 보이질 않는다.




학교를 5년이나 다니게 된 건, 복수전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미대는 넘치는 과제 때문에 복수전공을 추천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내 결정에 우려를 표했고, 학교 커뮤니티 사람들의 의견도 대부분 비슷했다. 학점을 유지할 자신이 있다면, 해라. 유지할 자신은 없었지만, 필요는 있었다. 결국 복수 전공을 선택했고, 부족한 솜씨로 직접 제본한 포트폴리오를 덜렁 들고 생애 첫 면접을 보러 갔다. 대기실 사람들은 전부 나보다 다섯 배는 두꺼워 보이고 인쇄소에서 제본한 포트폴리오를 들고 있었다. 거기에는 고등학교 선배도 있었다. 그녀도 아주 두꺼운 포트폴리오를 들고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 지원이라면서. 그때 속으로는 이미 망했다고 생각했다. 면접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고 연습도 하지 않았다. 대답도 버벅댔고 두 개의 얕은 질문만 받았다. 하지만, 아마도 성적 덕분에, 합격했다. 운도 좋지.


그렇게 시작한 복수전공은 열등감과 번아웃을 선사했다. 2학년 2학기의 내게 다른 과의 스킬이 있을 리 만무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너무나 감각이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이걸 도대체 어떻게 고쳐야 할지도 막막했다. 동시에 복(수)전(공)생이라는 이방인 신분의 나의 떨어지는 실력이 그럼 그렇지, 라는 식으로 여겨질까 봐 신경 쓰였다. 나는 못 했고, 별로였고, 숨고 싶었다. 전공에서도 다른 친구들의 그림에만 눈이 갔다. 겨우 완성해 제출하기 일쑤였고 과제물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웠다. 겨우 한 학기를 끝냈지만 뭘 제대로 한 것 같지도 않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몰랐는데 뭘 배울 힘은 없었다. 나는 전공과 복수전공 모두에게서 원투 펀치를 맞고 그로기 상태였다. 피와 땀으로 끈적이기 시작한 링 안에 쓰러져 있었다. 눈부신 조명에 눈을 가늘게 뜨고 하도 맞아 시야가 흐려진 상태로 말이다. 그때부터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이 시작되었다.


‘본업’도 창작이고 취미도 창작이면 이런 딜레마가 심해진다. 그려야 하는데 그리기 싫고 그러면서 그리고 싶다. 컴퓨터를 켜고 흰 캔버스에 낙서만 조금 하다 닫는다. 스케치북을 열고 뭘 그리려고 하지만 결국 그리지 못한다. 뭘 그리고 만들어도 완성하지 못한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불안만 심해져 방학에 노는 것 자체에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컴퓨터는 켜고 뭘 하지만, 그게 어떤 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종일 앉아서 뭘 했는지, 밤마다 누워 후회하기만 하는 것이다. 도대체 이 굴레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생산적인 것을 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하기에 하는 척이라도 한다. 뭐라도 쓰고 그림도 좀 그리고. 같은 나이의 사람들은 돈도 벌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 있지만 나는 전기만 열심히 쓰며 하루를 보낸다. 한여름 모니터 열기에 땀을 흘리면서 만든 건 관심을 받지 않는다. 더욱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지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되니까. 뭘 안 한 건 아니지만 뭘 이루지는 못한 방학만 늘어갔다. 퍽 절망적이다.


대학을 다니는 내내, 딱 평범한 수준의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니다. 사실 그건 입시 시절에도 확연했다. 나쁜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누가 보아도 내 그림인 걸 알아볼 정도의 고집스러운 그림을 그렸다. 입시 성공의 기준에서 많이 먼, 눈에 띄지 않는 희뿌연 그림이었다. 그때도 나는 못 하고 느렸다. 다소 정형화된 입시 그림에서조차 허둥댔는데 대학에 왔다고 나아질 리 없었다. 좀 더 되돌아보면 그 이전에도 나는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뛰어나지 않더라도 유일한 재능이었다. 결국 그나마 이걸 제일 잘하네, 의 소거법으로 진로를 정했다. 점수에 맞춰 과를 정하는 것보다는 더 적성에 맞아 즐거웠다. 동시에 슬퍼졌다. 하고 싶은 걸 할 때 잘하고, 잘하는 것을 할 때 즐거우니, 그럭저럭 잘해 그럭저럭 즐거웠다. 그렇다 보니 ‘하고 싶다’와 ‘하기 싫다’를 왕복하게 되었다.




어쩌면 모두가 하기 싫음을 평생 참고 사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무기력하다. 인간은 원래 나태하기 짝이 없는데 그걸 잘 조절하며 사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한심한 내가 그래도 뭘 만드는 이유는 그 반대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쉬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엇이 쉬는 것인지, 기분이 좋지 않으면 뭘 해야 하는 것인지, 불안은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니 그냥 마구 달리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만족감도 잘 느끼지 못한다.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쫓겨서 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되니 하고도 후회하고 하지 않고도 후회하는 것을 반복한다. 


매일 밤, 오늘 하루라는 실패를 잊으려 더 이상 눈을 뜨기 힘들 때까지 화면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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