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밟으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눈이 온 뒤다. 녹지않고 버티기에는 너무 따뜻했던 건지, 이미 다 녹아버리고 없다. 바닥에 깔린 벽돌들만 축축히 젖어있을 뿐이다. 공기는 놀랍도록 맑다. 대기의 먼지를 품고 떨어진 눈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야가 깔끔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멀리도 선명하게 보여 공간감이 일그러지는 듯도 하다. 비온뒤의 물비린내는 나지 않는다. 이미 물이 스몄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은 부분들에는 눈이 살짝 남아있다. 깨끗하고 희지만, 꽤나 녹아내려서 방금 내려 쌓인 눈에 비해 밀도가 낮은 것이 보인다. 나뭇가지 위에도 녹고있는 눈이 쌓여있다. 새가 앉았다 날아간듯한 얇은 발자국들이 남아있다. 어떤 새인지 생각해본다. 동네에 많은 까치일지도 모른다. 겨울이라 그런지 까치의 울음소리를 들은 지 오래된 듯 하다. 나무들도 잠시 쉬는 중인 겨울은 모두에게 긴 방학같은 구간일것이다. 물론 아파트 단지의 화단에 서식하는 듯한 고양이들에게는 그런건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어딜 그렇게 가는지는 모르지만, 차도를 살며시 건너거나 재빨리 화단으로 숨어버리는 통에 당최 어디에 살고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고양이들이 어디에 사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래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날씨가 심하게 춥지는 않아서 입을 벌려 숨을 내쉬어도 입김이 보이질 않는다. 이어폰을 끼고 거리를 걷는다. 반대편의 걸어오는 사람에 괜히 어색해져 바닥을 본다. 물이 스며 어두워진 보도블럭을 딛는 발이 빠르다. 사람이 무서워 생긴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외투의 오른쪽 주머니가 터져 손 이외에는 아무것도 넣을 수 없다. 잊고 휴대폰을 넣으면, 옷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무릎에 닿는다. 매번 꿰매둬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입고 걸어 놓으면 잊어버리고 만다.
겨울이라 창문을 열어놓지 않은 버스는 조금 눅눅하고 따뜻한 공기를 담고 달린다. 사람들은 각자 휴대폰을 보거나 창밖을 응시한다. 바닥에는 녹은 눈의 여파로 사람들의 젖은 발자국들이 남아있다. 버스가 커브를 돌 때마다 손잡이를 고쳐쥔다. 긁힌 자국들로 뒤덮인 손잡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기름에 살짝 미끄럽다. 창 밖의 빛이 매끈한 표면에 비친다.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린다.
녹은 눈이 버스정류장의 지붕에서 미끄러져 떨어진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부분을 피해 지나간다. 내렸던 버스가 옆을 지나가며 잠시 노랫소리가 묻힌다. 버스의 뒤를 눈으로 쫓으며 바쁘게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