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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Sep 07. 2022

21 마감은 다가오지만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반의 절반이 졸업 전시를 위한 아이디어가 없다고 대답했다. 교수님의 표정은 미묘한 웃음에 굳어있었다. 그 설문을 하기 전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얼마나 시간이 없는지, 11월까지 두 달 안에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반의 목표라고 강조했기에 더욱 그럴 테지. 안타깝게도 익명의 그 사람 중 나도 있었다.




여유로운 것인지 그냥 생각을 피하고 싶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직은 큰 아이디어가 없다는 사실이 두렵지 않다. 사람은 과거의 경험으로 항상 뭔가를 배운다. 대학생이 된 내가 배운 건, 내가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한 상태에서도 괜찮은 것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의 결과인지는 알 길이 없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은 ‘행운’이 같은 조건에서 계속 일어날 때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촉박한 시일 내에 좋은 성적을 받아온 경험을 학습한 나는 정말로 위험해지지 않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해야만 하는 힘든 일들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하며 잠 못 들면서도, 막상 시작은 하지 못하는 종류의 인간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미뤄도 결국 하기는 하는 사람과 포기하는 사람 중, 그나마 열심히라도 하는 인간이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변명일 뿐이다. 하지만 미리 생각하는 것이 해결책은 되어주지 못한다. 생각한 대로 모든 일이 일어난다면 삶은 훨씬 편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음대로 나아가는 일이란 없기에, 항상 모든 일을 즉흥적으로 선택하고 처리해야만 한다. 후회란 그래서 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시점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던 일들이 발목을 잡을 때도 있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올 것만 같다. 내가 해왔던 일들을 전부 돌아보면서 무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재앙의 순간. 지금까지는 확정된 것은 없이, 어딘가로는 나아가겠지, 싶은 안일한 마음으로 살았다. 어떤 이들은 너무 먼 미래를 벌써 걱정하지 말라 하고, 어떤 이들은 10년 뒤의 자신을 상상해보라고 말한다. 둘 중 어떤 것도 도움은 되지 않는다. 먼 미래를 걱정하면서 10년 뒤 내 모습은 떠오르지 않으니까.


10년 뒤는커녕, 일주일 뒤의 내 모습도 상상할 수 없다. 상상하고 걱정하는 것의 무의미함을 나는 더 크게 느낀다. 걱정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그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단계적으로 일을 해나가는 것은 나와 맞지 않는다. 창조적인 일을 하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마감일까지 어떤 방식으로든 끝을 맺는 것만이 사실상의 구체적인 목표이다. 며칠까지 어느 정도를 하겠다는 것을 결정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무엇이 완성인지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사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결과물인가? 뭔가가 부족하다면 무엇이 부족한가? 그 마지막 단계를 위해 나는 정해진 마감일보다 빠르게 작업해두고 며칠 시간을 두며 작품을 다시 본다. 시간이 조금 지나 보는 작업물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졸업 전시까지 사실상 석 달도 남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하다. 흐릿한 아이디어만 머릿속에서 굴려보는 지금 단계에서 나는 나아갈 수 있는 걸까? 정말 마지막 전시를 위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막상 시작하고 보니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거나, 재미가 없거나, 잘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과연 포트폴리오에 넣을 만큼 전문적인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까? 지금껏 흥미 본위의 작업만 해왔던 내가? 걱정이 많은 것도 당연하겠지. 어떤 걱정도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이제 와서 바랄 것은 아니다. 정말로 내가 만드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조차 모르는 지금 단계에서, 나는 갑자기 전문적이고 완전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던져졌다. 




이런 식으로 하루 이틀씩 생각하기를 미뤄버리면, 곧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걸 이성적으로 인지해도 마음에 와닿는 건 한참 뒤의 일일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너무 늦었을 때 비로소 늦었다는 것을 깨닫는 모양이다. 어쩌면 나만 그럴 수도 있겠지만. 후자가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는 더 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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