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사람들과 하루의 끝을 공유하는 날들이 계속된다.
지하철에 지친 사람들이 몸을 싣는다. 모두 하루 치만큼 마모되어 둥글둥글 흐려졌다. 서로와 어깨 맞대고 있지만, 우린 한 치 앞도 제대로 볼 수 없다. 뒤통수 보이는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저 사람이나 나나 힘들었을 것이라고.
퇴근 지하철의 분위기는 뭐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정체된 칸 속의 공기는 타인과 나의 체취가 한데 섞여 알 수 없는 삶의 냄새를 내뿜는다. 우리는 한 뼘도 안되는 거리 안에 함께 존재하지만, 각자의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어깨를 맞대고 있음에도 나는 그를 알 수 없다. 나의 날숨이 타인의 들숨이 되어 우리 사이의 공기는 섞여들어 하나가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 되지 않는다. 서로의 체취 섞인 칸 속에 갇혀 부유할 뿐이다.
문이 열린다. 바깥 공기가 스미며, 먼지 섞인 역의 공기가 코끝을 스친다. 문 근처의 공기만 살짝 동요할 뿐, 내부의 공기는 무겁다. 움직이지 않는다. 바깥의 공기는 시원하다. 다른 냄새가 나는 공기를 폐 안 가득 담는다. 지친 몸을 한쪽에 기댄다. 얼굴은 창밖을 향한다.
김 서린 창문의 작은 부분을 문질러 닦아낸다. 어두운 바깥은 네온사인만 빛을 발할 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스쳐 지나가는 간판들의 잔상만이 남아 검은색을 물들인다. 나는 잔상을 따라 무심코 눈을 움직인다. 늘 보던 간판들은 지친 내 눈을 시리게 만든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다. 습관적으로 어디쯤까지 왔을지 고개를 돌려 확인한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참 멀리도 왔다 싶다.
벽에 살짝 머리를 대고 있자, 차가웠던 표면이 미지근해진다. 이내 밀려들어 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려 몸을 웅크린다. 누군가의 따듯한 온기가 느껴진다. 슬쩍 둘러본다. 다들 최대한 눈을 마주 하고 싶지않은 듯, 아래만 보고 있다. 다시 눈을 돌린다. 해가 짧아져 이미 시커먼 하늘에는 별 하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