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라는 이벤트

직장인에게 수능과 졸업이 있나요

by 정신간호사 혜니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내가 한 노력에 박수를 받고 의미를 부여받는 순간들이 점점 줄어든다. 그래서 수능시험은 특별했다. 12년 동안 쌓아온 나의 실력을 한 번에 검증받는 날, 그동안의 노고가 어떤 형태로든 보상받는 날이었다.


19살, 수능이 끝난 날은 시원섭섭했다. 결과와 상관없이 모두가 나의 노력을 응원해 주던 시간이 끝나는 것 같아서. 앞으로는 과연 그런 박수와 응원을 받을 날이 또 있을까 싶었다.

직장인이 되고 나니 정말 그런 순간이 많지 않다. 성인이 되면 선택의 폭은 넓어지지만, 그 선택의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돌아온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시험처럼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 버티며 쌓아가야 하는 ‘일상’이라는 사실이 때로는 무력하게 느껴진다.
내가 하는 일이 정말 내 길이 맞는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계속 묻게 된다.

일이라는 게 그렇다. 의미를 부여할수록 이상과 현실의 거리도 커진다. 이게 과연 내가 원하는 방향이 맞는지 흔들릴 때가 많다.

간호사는 나에게 그런 직업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게 점점 버겁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3교대는 힘들고, 주간에는 견디기 힘든 졸음이 쏟아지고, 약속을 잡기 어려워 소중한 관계들이 멀어지는 것 같고. 원래는 환자들과의 교류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고 싶었지만 몸이 지치면 그 가치조차 흐릿해진다. 처방을 확인하고, 걸러내고, 환자의 컴플레인을 받고, 내 일이 아닌 일도 신경 써야 하는 순간들 속에서 짜증이 밀려올 때도 있다.
수능처럼 끝이 정해진 이벤트가 아니라는 점이. 그래서 더 무섭다.

그럼에도 나는 병원에 나간다.
어떤 일이든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다는 걸, 참고 기다리고 견딜 줄 알아야 비로소 보이는 가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분명히 내가 바라는 의미는 이 안에 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
“아, 이제 수능 끝나고 성적 때문에 힘든 고등학생들이 정신과에 많이 오겠구나.”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는 나를 보며, 나는 어느새 정말 정신과 간호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예전보다 조금은 무미건조하지만, 늘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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