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망친 모든 고등학생들에게
언제나 믿음직한 아이
늘 혼자서 뭐든 잘 해내던 아이
아무에게도 부담 주지 않으려고 조용히 버티던 아이
그 말들이 너를 오래 따라다녔을 거 알고 있다.
사람들이 말로 하지 않아도 기대하고 있다는 그 압박감이 얼마나 무겁고 숨 막히게 느껴졌을까
그래서 이번 몇 달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누구도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너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음은 분명해.
지금 너는 ‘공부 잘하는 나’가 곧 ‘나의 전부’라고 믿고 있어.
그래서 그 부분이 흔들리자
너라는 사람이 통째로 무너진 것처럼 느껴진 거지.
근데 그건 네가 약해서가 아니라 너 혼자 성실하고 씩씩하게 버텨온 결과야.
주변에서 늘 잘할 거라고 기대해 왔으니까
‘지금의 너’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도 컸을 거야.
그러니 마음이 버거웠던 건 네 책임이 아니야.
그건 네가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에 더 가까워.
그때의 노력은 점수로 보이지 않을 뿐 그대로 남아 있어서 언젠가 너에게 큰 자산이 되고 다시 걸어갈 힘이 될 거야.
한 번의 시험이 너를 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지금은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언젠가 정말 그렇다는 걸 네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날이 올 거야.
네 인생은 아직 새벽 5시에 있어.
아직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뿐이지,
지금은 그냥 시작점이야.
하고 싶은 게 보이지 않는 건 네 안이 비어 있어서가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길이 너무 많기 때문이야. 천천히 찾아가도 충분히 괜찮아.
지금 겪는 이 시기는 어쩌면 너라는 사람을 다시 만나는 과정일지도 몰라. 그러니 이 힘든 마음을 너에 대한 결론처럼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해.
잠시 쉬어도 괜찮고
돌아서 가도 괜찮고
너의 속도로 천천히 걸어가면 돼.
너는 이미 소중한 사람이야.
누군가의 딸이기 전에, 학생이기 전에,
무언가를 해내야만 가치가 생기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너 그대로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