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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아무래도 먹기보다는 먹이려고 하는 일이다. 당연히 내 취향은 뒷전이다. 오랫동안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게 뭔지 헷갈린다. 아내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미국에 혼자 유학 갔을 때(아들이 열 살 때 떠났다) 슈퍼마켓을 두 시간 동안 돌았지만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평생 자기를 위해 무엇인가를 사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자 이 년쯤 지내면서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그런 세월을 선물해 주어서 고맙다고 했고, 나는 그런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옛날에는 분명히 돼지고기 수육을 좋아했다.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끓인 김치찌개도 무척이나. 혼자일 때는 나를 먹이는 것이니 내가 맛있는 기억을 떠올렸다. 수육을 만들어 보았다. 옛날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김치찌개를 끓여 보았다. 얼마 전만 해도 손님을 위해 만들고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왜 이렇게 맛이 없을까. 돼지고기를 적게 넣었나, 신김치가 맛이 없는 것인가. 그러다가 사탕수수 발효시킨 마법가루의 힘을 빌었지만 소용없었다. 시장이 반찬이 되지 않았다. 그때 남산파 강독하는 날이면 늘 들렀던 일본 라멘집이 떠올랐다.
차슈는 좀 낫겠지.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덩어리째 사 와서 노두유에 하룻밤 재우고, 구운 다음(물론 이때는 속까지 익지 않는다) 만들어둔 소스*에 물을 붓고 한 시간쯤 끓인 다음 식힌다. 이 방식은 빨리 만드는 것이다. 오븐이 있으면 고기를 소스에 적어도 이틀밤은 담가 두었다가 오븐에 넣어 구워내면 된다. 180도에서 한 시간 정도. 가끔 소스를 바르고 물을 보충하면서. 차슈라는 것이 한자로 차소叉燒인데 꼬챙이에 꿰어 구운 바비큐 같은 것이다. 양념해서 재워두었던 고기를 꼬챙이에 꿰어 불에 구워낸다.
어제 공원에서 본 조각이 떠올랐다. 사람의 등에는 닭 꽁지 같은 게 달려있고 머리에는 벼슬이 나 있었다. 왜 저런 모습으로 만들었을까. 걸으면서도 한참 그 생각을 했다. 그 조각가는 플라톤을 떠올렸던 것일까? 플라톤이 똑똑하다지만 어처구니없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 학생들과 토론한 끝에 인간은 '털이 없는 두 다리 동물'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디오게네스가 털을 몽땅 뽑은 닭을 가지고 가서 '여기 너희들이 말한 인간'이 있다며 던져 주었다. 그게 꼬챙이에 꿰인 닭의 이미지는 아니다.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긴 하지만.
*설탕, 양조간장, 생강, 맛술, 대파, 다진 마늘, 오향분, 팔각을 섞어 만드는 것이다. 양조간장을 베이스로 해서 감미료(설탕)와 여러 가지 향신료를 넣은 것이다. 마늘, 대파, 생강으로 냄새를 잡고, 오향분과 팔각으로 특별한 향을 더한 것이다. 대충 이렇게 감을 잡으면 소스 만드는 것도 ‘생각하면서’ 하게 된다. 이 세상 모든 음식재료의 맛을 살려내는 것은 양념(소스)이다. 그걸 알면 요리가 쉬워진다.
다 된 차슈를 얇게 썰어 조금 덜어내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었다.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게 변했나 보다. 시금치나물, 곤드레나물, 가지나물, 콩나물을 조금씩 덜어서 밥 위에 얹고 비볐다. 전자레인지에 데운 뜨거운 물 한 컵과 잠깐 서서 먹었다. 뭘 좀 먹어야 글을 쓰든 산책을 나서든, 뭐든 할 수 있을 테니까.
오늘치 약을 먹고 카페라테를 만들어 서재로 왔다. 어쨌든 힘이 좀 난다. 오늘치 글을 써야 한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오늘치 산책에 나설 것이고. 닭꽁지 인간을 만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