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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Feb 12. 2020

고민스러울 때 알리오 올리오

-09


결혼하고 일 년 동안 20킬로가 불었다. 그러고는 34년 동안 빠지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아무리 힘들어도. 심지어 단식을 해도 소용 없었다. 해마다 한 번 정도, 마음이 힘들면 단식을 했다. 단식 기간이 치유기간이었던 셈이다. 섭식 기간까지 더하면 대충 3주는 거의 먹는 게 없다. 그래도 빠지지 않았다. 잘해야 3킬로그램 정도. 그까짓 것 단식 끝나면 금방 회복되었다.  

신기하게도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먹는 것이나 운동량이나 그리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좀 더 본격적으로 빠진 것은 만성위염 때문이다. 건강검진을 받고 마음먹었다. 먹는 양을 줄이고 운동 양을 늘려야 해. 날마다 만 보 정도 걸었고, 식사량을 반 정도로 줄였다. 소화 안 되어 불편한 것이 없어졌고, 잠도 ‘비교적’ 잘 자게 되었다. 거의 10킬로가 빠졌다. 놀랄 일이다. 도대체 살은 왜 찌는 것이며 왜 빠지는 것인지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외출할 때도 기분이 좋다. 옷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보기에도 한결 낫다. 늘 존재감을 과시하던 욕심 많은 배가 사라졌으니. 통통하던 얼굴이 브이를 조금은 상상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즐겁게 살아가는데 보기 좋은 건 중요한 문제다. ^^

먹는 것 때문에 아주 고민스러울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늦은 밤 배가 고파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먹으면 위장에 부담이 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지 않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어 먹었다.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다 보면 까르보나라가 생각난다. 통베이컨의 고소한 맛이 떠오르는 것이다. 양파도 좀 넣고 잘 볶는다. 그걸 알리오 올리오와 섞고, 그 위에 달걀과 치즈로 소스를 만들어 부으면 까르보나라가 된다. 고민하다가 넣는다(넣지 않을 때도 있다). 대신 모두 조금씩, 조금씩. 눈치챘겠지만 절대로 아주 조금이 되지는 않는다. 다 만든 다음에 반은 덜어서 냉장고에 넣고 조금 먹는다. 요즘은 희한하게도 입맛이 없다. 음식을 만들고 나면 배고픔도 조금 사라진다. 그렇지 않았다면 반만 먹고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척이나 맛있으니까. 그랬다면 세 번째 고민이 시작되었을 것이고. 살을 빼려고 작정한 몸 같다.

밤늦게 정말 고민될 때는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어 드시라. 올리브유와 마늘, 파슬리의 하모니가 건강에도 좋고 소화도 잘 된다. 그다지 살이 찌는 음식도 아니다. 오늘 저녁은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어 먹을 작정이다. 장담할 수는 없다. 그게 까르보나라가 될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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