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힘
이처럼 우리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이런 인간의 인식 능력을 긍정적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인식 능력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인문학이 바로 그런 공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공부를 ‘언어’를 통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이란 것도 ‘모국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하지요. 사실 인간은 말과 글을 통해 마법과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어는 세상을 추상해내면서 ‘없는, 또는 절대 알 수 없는 객관적 존재’를 생각 속에 ‘있게’ 만듭니다.
그럼으로써 인식의 한계를 넓혀나갈 수 있었고 인간만의 특별한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 누릴 수 있었지요. ‘마법과 같은 능력’에 관해서는 하나만 예를 들겠습니다. “There is nothing”이라는 문장을 봅시다. 다들 알다시피 이 말뜻은 ‘없는 것이 있다’입니다. ‘아무것도 없다’고 번역할 수 있지요. 인간은 없어서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것’을 언어로 만들어진 추상적인 개념을 통해 보는 겁니다.
희한하게도 사람이 만든 이 ‘없다는 개념(無, 제로)’은 아주 쓸모 있는 도구입니다. 제로를 발명함으로써 인간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셀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하게 큰 숫자를 가볍게 표시합니다. 억이라는 숫자 단위만 해도 그런데 요즘은 그보다 천 배나 큰 조라는 숫자 단위도 뉴스에서 자주 접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인간이 쓰는 말은 모두가 사실이 아니라 개념일 뿐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닙니다. 더 자세한 것은 언어학에서 다루겠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굳이 언어학적인 설명을 조금 덧붙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이유가 모국어(언어) 때문임을 잠깐 짚어두려는 것입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예는 아프리카의 나미비아 북쪽에 살고 있는 힘바족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힘바족에게는 색깔을 표현하는 단어가 여섯 개 정도밖에 없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색깔을 인식하는 체계가 우리와 아주 다릅니다.
그 가운데 다음 단어의 뜻을 보면 어떻게 저런 인식이 가능할까 싶습니다.‘주주’는 빨강 파랑 녹색 자주색 일부가 그에 속하고, ‘바파’는 주로 흰색이지만 노란색의 일부가 포함됩니다. ‘보루’는 일부 녹색과 파란색을 가리키며, ‘덤부’는 일부 녹색과 갈색, 빨간색을 포함합니다.
이런 언어를 가진 힘바족에게 ‘보루’에 속하는 녹색과 파란색을 섞어 두고 다른 색을 골라보라고 하면 ‘다른 색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보루에 속하는 녹색과 덤부에 속하는 녹색을 섞어 보여주면 금방 찾아냅니다. 우리는 그 차이가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지만요.
여기에서 사실은 같은 것인데 다르게 인식되거나, 다른 것인데도 같은 것으로 인식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속한 집단의 문화라는 거시적인 관점도 어떤 사람을 달리 보이게 만든다는 겁니다. 이처럼 언어는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마법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사람의 생각을 통제하고 규정하는 역할도 합니다. 아는 만큼 보고, 보고 싶은 것을 보게 하고,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게 만드는 겁니다.
#없다가있다, #언어의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