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이 사라지면 좋을까? 01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가운데 「기억의 천재 푸네스」가 있습니다. 푸네스는 사고를 겪은 뒤 사진기 같은 기억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본 것 모두를 그대로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세 유령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요? 다음은 그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그는 전혀 힘들이지 않고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라틴어를 습득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곤 했다. 사고를 한다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며, 또한 일반화를 시키고 개념화를 시키는 것이다. 푸네스의 풍요로운 세계에는 단지 거의 즉각적으로 인지되는 세부적인 것들밖에 없었다.
-보르헤스, 황병하 옮김, 『픽션들』 「기억의 천재 푸네스」, 민음사, 1994. 188쪽
이런 기억력을 가진 푸네스는 스스로 ‘쓰레기 하치장’과 같은 기억력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위 인용문에서 “사고를 한다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라는 말이 좀 혼란스러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상을 해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남자들만 모아놓고 보면 다 달라 보입니다. 차이가 보이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거기에 여자가 끼어들면 갑자기 남자들은 다 비슷해 보입니다. 한 여자만 달라 보입니다. 모두가 달라 보이던 남자들이 ‘여자’와 구별됩니다. 여기에 개나 소, 말을 더해보면 다시 남자와 여자는 비슷해 보이고 개나 소, 말이 비슷해 보입니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이 가능한 것은 ‘사소한’ 차이를 잊고(보지 않고, 또는 무시하고) ‘중요한’ 유사성을 볼 수 있는 능력 때문입니다. 그래야 주변의 모든 것이 논리를 갖기 시작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일반화하고 개념화하는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이 앞에서 소개했던 유령들의 긍정적인 역할입니다.
‘사소하다’라거나 ‘중요하다’는 판단은 보고 싶은 것을 볼 줄 알고,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줄 알기 때문에 생기는 가치 판단입니다. 가치 판단을 할 수 없다면 선택할 수 없고, 결정 장애를 일으킬 수밖에 없어요. 이런 역할을 하는 유령이 사라진(또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병 가운데 하나가 ‘사진 같은 기억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위 인용문은 ‘지어낸 이야기fiction’이니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놀라운 것은 소설 속의 푸네스보다 기억병이 더 심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