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이 콜드브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스핀오프 03
아직도 외출은 두렵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큰소리로 울지도 모른다. 그런 적이 있다. '무심코' 저녁나절 산책을 나섰다. 오랜만에 산 쪽으로 갔다. 아내가 떠난 뒤 처음이어서 그랬을까. 산으로 오르는 입구에 서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아내가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대단히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귀찮기도 했다. 씻고 말리고 빗고 바르고 옷과 신발을 고르는 과정이.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모르지만. 조금도 그렇지 않았다. 아직은.
일도 일이지만 음식재료 사기 위해 가끔 나가야 한다. 카페라테를 만들 재료, 배고픔을 달래줄 깜빠뉴 하나. 신선한 채소와 과일, 발효 두부...... 빵까지 집에서 만들 생각은 '아직' 없다. 맛있는 카페라테를 위해서는 콜드브류 커피가 필요한데, 그것 역시.
얼굴을 푹 덮을 정도의 후드가 달린 오버코트를 둘러 쓰고 나섰다. 먼저 콜드브류를 파는 카페에 들렀다. 한 달에 한 번쯤 갈 것이다. 그래도 내 얼굴을 알아보고 뭘 사 가는지도 안다. 들어서서 스마폰을 주면 다 알아서 해준다. 그날따라 그래 주던 사람이 없었다.
조금 쭈뼛거리다가 필요한 걸 샀다. 나오는데 알바인 듯한 분이 와서 쪽지를 하나 준다. 뭐예요? 전에 여기 일하던 언니 아시죠? 안다고 해야 하나? 삼십 대 초반이라는 것밖에 아는 게 없는데......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전해 드리래요. 그러면서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내 손 둘다 뭔가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옆집에서는 깜빠뉴를 하나, 방울토마토 한 봉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콜드브류 커피와 우유를 일대이나 일대 삼으로 섞는다. 큰 숟갈로 백 번 젓는다. 맹렬하게. 위쪽으로 거품이 좀 난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이 분' 돌린다. 둘 다 냉장고에서 꺼내었을 때 이 분이다. 딱 끓기 직전까지 간다. 레인지에서 꺼내어 다시 맹렬하게 백 번 젓는다. 더 쉬운 방법이 있긴 하다. 주둥이가 큰 병을 하나 마련해 두었다가 거기에 넣고 흔들어대는 것이다. 흥겨운 음악이 있으면 훨씬 더 잘 된다. ^^ 퍼시캣 달즈의 <스웨이 Sway>가 아주 좋다. 노랫말도 흔들자는 것이니.
여기 춤추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대여 나에게는 당신만 보여요.
당신의 테크닉은 마법인 것 같아요.
우리가 흔들 때마다 나는 점점 약해져요.
흔들어대고 나서 다시 레인지에 넣고 일 분을 돌린다. 흔들고 돌리고 나면 어디에서 파는 카페라테보다 맛있다. 한 모금 홀짝이면서 카페에서 받은 쪽지를 펼쳐보았다.
보고 싶으니까 한 번 들러 주시겠어요? 저는 마산동 지점으로 옮겼답니다.
지금까지 나는 사람의 얼굴이나 몸매에 먼저 관심을 가졌던 적이 없다. 남자든 여자든. 관계가 시작되면 그제야 얼굴과 이름을 기억했다. 아니면 아예 기억을 못 했다.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 꽤 길게 이야기를 하고서도 시간이 지나면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글쎄, 화까지 낼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둔해서 그렇다고 사과했다.
이 쪽지를 쓴 사람은 기억한다. 아주 젊은 이다. 내 나이의 반쯤. 외모가 이상형이었을까? 처음부터 눈에 들긴 했다. 그렇지만 한 번도 표현해 본 적은 없다. 그런 눈치는 있었다. 너무 어리잖아. 불편해서 안 돼. 그러던 언젠가 내가 물었다. 미안하지만 나이를 물어도 되겠어요? 삼십 대 초반이에요. 나는 몇 살로 보여요? 거침없었다. 오십 대 후반요.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우린 나이 차이가 너무 많아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뜻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한참 동안 그 카페에 갈 일이 없었다.
적은 양을 자주 먹는 게 위장에 부담을 적게 준다. 해 보니 그랬다. 깜빠뉴 조각에 트러플 스릴과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발랐다. 카페라테와 함께하는 빵 한 조각으로 아점을.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흰 구름이 떠가고 있었다. 세 사람이네.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