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창래 Mar 06. 2020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지금도 우리에게 필요하다

-1990년대 베스트셀러

홍세화가 쓴 ≪빠리의 택시운전사≫(1995)는 1970년대 말 한국 현대사를 불러낸다. ‘남민전’, 즉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때문이다. 저자는 그 조직의 일원이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삐라’를 뿌리려 했던 게 전부였다. 그것도 실패했지만. 동시에 무역회사 사무원이기도 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럽 지사로 발령이 났다. 그는 이 기회에 ‘다른 사회’를 보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게 된다. ‘유신체제와 긴급조치’로 재갈 물린 사회를 뒤로하고 다른 사회를 만나러 갔던 것이다. 당시 한국 정권은 ‘정권에 반대한다는 생각’을 표현만 해도 잡아가두고 고문했다. 

홍세화가 유럽으로 떠난 뒤 오래 지나지 않아 남민전 사건이 터졌다. 그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다. 홍세화도 그 조직원이었다는 것이 교포사회에 알려지고 따돌림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프랑스에 망명 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프랑스 관료 입장에서 볼 때는 망명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정치적인 의견을 말했을 뿐인데 잡혀가서 고문당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니 설득력이 없었다.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돌아갈 수 없느냐는 질문에도 신통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추상적이지만 프랑스 실존주의자인 싸르트르와 까뮈에게 영향을 받았고, 지식인의 현실참여 의지가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열정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망명이 허락되었다. 그 뒤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되어 생계를 꾸렸다. 그 직업 덕분에 다양한 프랑스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접할 수 있었다. 한 사회가 다른 사회를 만나 겪은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필자는 책보다 먼저 ‘똘레랑스’라는 용어를 접했다. 관용이라는 뜻이겠지. 한국 사회는 관용적이지 않아. 다양성에 대한 관용이 필요해.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똘레랑스’가 유행어가 된 것인지 알고 싶었다. 번역하지 않고 굳이 똘레랑스라고 하는 이유도. 그제야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사 보았다. 남민전 조직원이라는 전투적인 이미지와 달리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그게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진 이유였을 것이다.

책에는 ‘똘레랑스’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기본적인 의미는 ‘존중받고 싶다면 존중하라는 것이다’. 차이가 차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국가 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때에도 똘레랑스가 작동한다. 예를 들면 제한속도를 110km/h로 법이 정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10~20km/h 정도는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더 잘 알고 싶다면 필자가 그래야 했던 것처럼 책을 사보면 좋겠다. 이 책은 1995년의 베스트셀러다. 출간되자마자 3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저자는 자신의 삶이 이 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했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2006년에 개정판이 나왔고 여전히 많이 팔리고 있다. 우리에게 ‘똘레랑스’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책의 향기: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빠리의 택시운전사>, 20년 2월 22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