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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운 Jul 28. 2021

영화가 학교폭력에 다가가는 방식

<소년시절의 너>(2019), <파수꾼>(2011) 비교

영화는 감독의 시선을 따르는 예술이다감독은 본인이 썼든 아니든 각본을 영상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남긴다그 도구가 문학에서는 활자라면영화에서는 카메라 렌즈다감독은 자신이 목격하고 의도한 세계를 카메라에 찍힌 영상으로 스크린 위에 재현한다증국상의 <소년시절의 너>와 윤성현의 <파수꾼>은 학교폭력이라는 주제로 묶이는 영화인데이 두 영화에서 감독의 눈은 학교폭력에 어떻게 가닿는지더 나아가 감독의 시선을 좇는 관객들이 어떻게 영화에 참여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소년시절의 너>의 초반부 카메라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첸니엔(주동우)의 몸에 새겨진 폭력의 상흔을 놓치지 않는다집요할 정도로 그녀의 신체를 따라잡는 카메라는 외화면을 다소 포기한다그래서 외화면에 존재하는 영화 속 세계는 객석에서 편히 영화를 관람하던 관객의 몫이 된다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한 아이가 견디기엔 지독하게 방대할 그 세계를 학교폭력의 기억을 가진 당사자도 아니고 서사와 전혀 관계없는 관객들에게도 학교폭력 문제를 자신의 세계에서 상상하도록 쥐여 주는 것이다다만중반부 이후 카메라의 시선이 샤오 베이(이양천새)를 영화 속에 편입하려는 방식이 아쉬움으로 남는다상처 입은 두 인물을 연결하기 위한 매개로 피해자들의 연대를 이용하는데영화는 그 보이지 않는 감정을 선명히 드러내기 위해 최루성 로맨스를 택한다사회문제와 두 인물의 감정을 모두 선명히 가져가려는 시도는 사회고발과 신파극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모습으로 점철된다.



<파수꾼>은 중심인물만이 아니라 사건에 연루된 세 친구 모두에게 발언 기회를 준다도입부에서 학교폭력의 가해자를 지목하던 영화는 점점 폭력의 대상과 주체 사이를 오간다영화가 전개될수록 관객은 폭력의 환부가 아닌 아이들 사이에 미묘하게 발생하는 감정의 파열을 목격한다사후에 이뤄지는 당사자들의 증언은 당시 사건들을 말하고 있지만사건 당시에 서로에게 꺼내지 못한 감정들은 말해지지 않는다기태(이제훈)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라는 말처럼이 영화는 설명하지 못하는 정황들을 설명하려는 영화이기 때문에 증언들은 필연적으로 오인될 수밖에 없다그래서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된다는” 동윤(서준영)의 확신에 찬 오판은 기태의 죽음을 가져온다세 아이의 입장을 모두 보여주는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폭력의 원인이 더 불투명해진다그 희미해진 인과 사이엔 폭력만 남는다가해자와 피해자 없이 그 폭력의 역학만 확인할 수 있는 관객들은 폭력의 인과를 영화가 끝난 이후에 고민하게 된다.



학교폭력에 다가가는 방식만큼이나 두 영화가 결말에서 내리는 답도 다르다. <소년시절의 너>가 시작되는 시점 이전에 첸니엔은 왕따를 당한 기억이 있는 인물이다그리고 이 기억이 시발점이 되어서 다시 왕따의 위치로 돌아가는 계기가 된다주동우는 문제의 해결을 거듭 뒤로 미루며 대학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지금 겪는 문제는 해결된다고 믿는다학생이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처럼 기능하는 대입 시험은 과연 아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가. <소년시절의 너>는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 같다첸니엔과 샤오 베이가 교도소 수송 차량에 함께 오른 장면 뒤에 이어지는 대입 시험 답안지에 적힌 20년 뒤 나에게 보내는 편지는대입 시험이 아니라 현재의 트라우마와 맞서라는 영화의 주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기태의 아버지(조성하)를 통해 사건에 다가가는 <파수꾼>은 결말에 이르러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영화다기태의 죽음으로 시작한 영화는 다시 기태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앞서 말했듯완전할 수 없는 증언들은 아들에게 무심했던 아버지의 실패로 이어진다폭력의 원인이 없다면 우리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무력할 정도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지목할 수 없는 이 영화는 철길에서 야구를 하던 아이들의 웃음만 형형하게 남긴다.




*해당 글은 <씨네리와인드>에 먼저 게재된 기사입니다.

링크. http://www.cine-rewind.com/sub_read.html?uid=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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