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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현 Jul 29. 2015

MD들의 전쟁터

WAR ROOM (워룸)



"안되겠다. 응급실 가자"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다가 신랑이 말했다.


퇴근하고 버스에서부터 눈알이 빠지도록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껍고, 다리에 힘이 쭉쭉 풀렸다. 신랑과 퇴근시간이 맞아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는데, 신랑에게 나의 증상을 얘기하고 날 삼겹살집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웃기는 얘기지만 그때 스스로를 음식 섭취 부족으로 기력이 떨어진 상태라고 진단했고, 고기를 먹으면 나을 거라고 확신했다.


'지글 지글'

고기가 한 점, 두 점 사라지고 배는 불러오는데...

"아 토할 거 같아"

머리는 더 심하게 아파오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신랑이 이것저것 인터넷으로 검색하더니 말했다.

"더위 먹은 거 아냐? 퇴근할 때 오래 걸어왔다며."

일사병 증상을 찾아보더니 내 증상이랑 비슷하단다. 계속 열이 올라가고 증상이 계속되면 치사율도 높다고 한다. 결국 신랑의 정보력으로 삼겹살을 먹다 말고 응급실로 향했다.


"머리가 미칠 듯이 아프고요, 토할 거 같고, 쓰러질 거 같아요."

의사는 CT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소변검사, 피검사, CT 검사까지 끝내고 2시간을 기다린 끝에 결과가 나왔다.

"피도 깨끗하고 머리도 상처 같은 거 전혀 없고 멀쩡해요." 의사가 말했다.

"아, 그럼 진짜 더위 먹어서 이런 건가요?"

"뭐 그럴 수도 있고요, 아니면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그런 거 같기도 해요."

스트레스? 스트레스? 난 스트레스가 없는데.

뭐 아무튼 문제 있는 거 아니라니 다행이다. 집에 가서 하루 푹 쉬면 낫겠지. 그 후로 일주일이 무사히 흘렀다.


그 날은 방송이 있는 날이었다. 내가 담당한 상품은 주 1~2회 정도의 편성을 갖고 운영한다. 일주일 만에 전국의 TV 채널로 방영되는 내 상품. '콜 잘 나와야 되는데..' 기대 반 부담 반으로 워룸(war room)에 들어갔다.

전방에서 PD, 음향감독, CG 감독, 기술감독, 조명감독들이 생방송 운영에 전력 투구하면, MD는 후방에 있는 모니터링 실에서 방송이  문제없이 진행되는지 체크한다. MD만 들어가는 그 모니터링 실을 워룸, 즉 '전쟁 방'이라 부른다.


신입사원 교육 중에 처음으로 워룸 체험을 한 날, 생방송 중이었던 선임 MD의 '클릭'소리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느 MD나 마찬가지일 것이고, 방송 3년 차인 나도 워룸에서 늘 하는 행동이다. 클릭질. 전쟁이라 불리는 이 방에서 들리는 다발총 소리 같다고 해야 할까. 모든 MD들이 1초도 놓치지 않고 클릭하는 버튼은 바로 '주문실적 확인' 버튼이다.

1시간 동안 전국으로 송출되는 내 상품. 그리고 몇 초, 몇 분 간격으로 상승하는 실적. 공중파의 CF라도 잡히면 몇 분 안에 주문 콜 수는 전체 목표 실적의 40%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MD 들은 이 클릭질을 '쪼는 맛'이라고 표현한다. 쪼는 맛.. 실적이 올라갈수록 신이 나는 맛이다. 하지만 반대로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결국 방송 종료 5분 남을 때 까지도 달성률이 60% 채 되지 않는 날도 있다. 이대로 내 몸뚱이가 사라져 버렸으면 싶은 날이다. 여유를 갖고  영업할 수도 없고, 그 한 시간에 나의 일주일 실적이 좌우되는 참으로 피 말리고 숨 막히는 현장이다. MD들이 방송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 날 방송은 무난하게 잘 나왔다. 달성률 109%. '무난하게'는 겸손이고, 사실 완전 잘 나왔다! 좋은 분위기로 방송 사후미팅을 마치고 자리고 돌아왔는데 '내 몸이 왜 이러지...?'


속이 메스껍다.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토할 거 같다. 일주일 전 응급실에 갔던 그 증상이랑 비슷한 몸상태다. 멀쩡했던 내가 갑자기 왜 이러지. 혹시 방송? 방송 때문인가? 희한하게도 응급실 갔던 날도 방송을 끝내자마자 퇴근했던 날이었다. 방송 결과 보고 메일을 찾아보니 그 날 달성률은 90%였다. 그렇게 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 아무래도 너무 건강하고 멀쩡한 나로써는 다른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TV MD로써 방송에 대한 압박이 이 정도일 줄이야.


예전에 신랑이랑 했던 대화가 생각난다.

"나 오늘 저녁 방송 있어서 집에 늦게 들어가"

"방송? 재밌겠다~"

"재미라니? (엄청 진지하게) 방송은 전쟁이야."

"..."

"..."

"크하하하하하. 그게 무슨 삼류 성장드라마 대사 같은 소리야. 푸하하하하"

나름 진지하게 한 말을 비웃었던 신랑이다. 나도 말하고 나서 너무 어이가 없어 같이 웃긴 했지만.


날 응급실까지 가게 만든 '방송'이란 녀석!

정말 MD들에게 홈쇼핑 방송은 '전쟁'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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