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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현 Aug 22. 2018

휴가를 떠나기 전

“휴가 쓰고 왜 사서 고생을 해?”
"남편이 휴가네, 남편이 휴가야"
"신랑은 무슨 복을 타고난 거야”


 한 달 휴가를 받아 아이와 둘이 제주도에 간다고 하니, 회사 사람들이 너도 나도 잔소리를 한 숟가락식 보탠다. (우리 회사는 작년부터 근속 5년이 지나면 2주 무급, 2주 유급으로 최대 4주까지 쉴 수 있는 창의 휴가가 생겼다)


 먼저 ‘독박 육아’, ‘헬 육아’, ‘애가 태어나면 인생이 끝난다’는 등 부정적인 말들이 난무한데, 너무도 행복한 육아를 하는 한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육아도 직장처럼 세 가지가 충족되면 할 만하다는 것. 바로 퇴근, 주말, 휴가다. (하지만 이 세 가지는, 직장도 역시 마찬가지로, 전혀 내 뜻과는 무관하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퇴근’은 저녁 일정한 시간에 잠드는 아기를 만나야 가능하고

‘주말’은 육아에 적극적인 남편을 만나야 가능하고

‘휴가’는 애기를 잘 맡아서 돌봐줄 수 있는 친정/시댁을 만나야 가능하다.  


 나는 운이 좋게도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행운아다. 매일 저녁 8시면 알아서 곯아떨어지는 딸내미가 육아 퇴근을 허락해주고, 아기란 존재에 전혀 두려움이 없는 남편은 흔쾌히 나의 주말 외출을 허락해준다. 첫 손주를 맞은 시댁은 수시로 아이를 시댁에 유학(?) 보내기를 바라셔서 우리 부부는 종종 아이를 시댁에 보내고 둘만의 휴가를 즐긴다. 독박 육아한 적 없고, 육아는 거의 신랑 몫에, 기회만 되면 유학 목적으로 애를 시댁에 보내는 불량 엄마의 휴가 계획이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한 달 휴가 쓴다길래 애는 시댁에 맡기고 유럽이라도 다녀올 줄 알았다는 친구 말에 버럭 했다.

 “야! 그걸 왜 지금 알려주는 거야?”

 숙소도, 배표도 다 예약해놓은 상황.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휴가가 다가오자 회사에서 나의 모든 미팅의 마지막 화두는 제주도 한 달 살기였다. 편성이 확정되면 방송하기 3-4일 전에 피디, 쇼호스트, 엠디, 협력사가 방송 사전 미팅을 진행한다. 휴가 가기 전 마지막 사전 미팅인 만큼 미팅이 끝나고 한 달간의 부재를 쇼호스트, 피디에게 알렸다. 부러움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이로써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휴가의 기쁨이 몇 배로 가까이 느껴졌다. 한 달 동안 뭐할 거냐는 질문에 제주도 숙소를 예약해놨다고 대답했다.

 “와 좋겠다!” 쇼호스트가 말했다.

 “저도 제주도 보름 살기 하고 온 적 있어요!” 또 다른 쇼호스트가 말했다.

 “아 정말요? 어떠셨어요?”

 “그 뒤로 제주도는 갈 생각도 안 나요.”

 응? 내가 생각했던 답변이 아닌데? 이거 자꾸 불안 해지는 건 왜일까…


 그렇게 나의 한 달 휴가, 아니 남편의 한 달 휴가는 시작되었다.


에퀴녹스 드 협재 (우리가 지냈던 B101호. 방2개, 화장실 2개, 거실, 주방/ 일주일에 한번씩 청소 및 이불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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