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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현 Sep 13. 2018

어린이집 만세

2. 예상치 못한 변수_ 애 둘 보기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애기 한 명 키우고 있는 사촌언니와 함께 하기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처럼 자매처럼 지낸 한 살 터울의 사촌언니다. 엄마 둘 애 둘이면 같이 돌보기도 수월하고 애들끼리 놀게 할 수도 있다! … 는 개뿔. 이 꼬맹이들은 상대방이 가진 것을 끊임없이 탐하고, 시도 때도 없이 전쟁을 선포했다. 원래 키우고 있던 한 명에서 둘로 늘어난 것뿐인데 그 이상으로 노동하는 느낌이라니.. 사실 이건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을 상황이긴 했다. 우리 집 애는 "미운" 세 살, 함께하는 조카는 "미친" 네 살이었으니 말이다. 이 아이들과 24시간 붙어 있을 생각을 하니 그리워지는 얼굴이 있다. 시현이를 사랑으로 돌봐주시는 어린이집 선생님들.. 이 시점에 새삼 감사하고 존경스런 마음이 드는건 왜일까?

 

 내 아이가 부리는 떼, 투정은 컨트롤 가능하다. 잘못한 행동을 하면 망설임 없이 훈육하고, 반대로 훈육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선 충분한 애정을 가지고 수용해주고 마음을 읽어준다. 사랑만을 쏟아내면 그만이었던 조카와의 짧은 만남이, 한 달 간의 동거로 바뀌게 되며 나도 큰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기 아들을 훈육하고 있는 나에게, 단 한번 싫은 소리 하지 않은 언니가 참 고마웠다. 물론 그 훈육이 소리치고 다그치는 방법이 아닌, 무겁고 엄하게, 아이들이 스스로 진정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방법이었기에 언니도 인정해주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저녁 조카 지훈이가 입안에 물집 같은 게 나서 저녁을 거의 못 먹고 잠들었다. 시현이 역시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잠들어서 둘 다 일어나자마자 배고프다며 밥을 찾았다. 죽 한 그릇을 먹고 놀다가 10시가 되니 애들이 또 밥을 찾는다. 나 같으면 밥은 점심에 먹게 할 텐데, 지훈이는 워낙 밥을 잘 안 먹는 애라 이런 기회에 먹여야 한다며 밥을 차려줬다. 그리고는 시현이도 덩달아 밥을 먹게 되었다. 지훈이는 잘 먹었지만. 시현이는 또 한 번 먹는 둥 마는 둥 장난을 치길래 밥을 다 치워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나 스스로 화가 난걸 못 참은 것 같다. 밥 먹는 시간이 아닌데 밥을 먹게 된 상황, 그렇다고 애가 잘 먹지도 않는 모습, 하지만 언니네 아기는 푹푹 잘 떠서 먹고 더 달라고 말하는 상황. 뭔지 모르게 짜증이 나서 “밥은 밥시간에 먹어야지 “라고 모질게 한마디를 뱉게 되었다. 그러고는 왜 이렇게 나 자신이 유치해 보이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 건지 평소에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잘 울고, 지침을 주어도 한 번에 따라오지 않았던 지훈이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지훈아 과자는 침실에서 먹을 수 없어, 가지고 나가서 먹자

지훈아 밖에 구경 다 했으면 이제 그만 들어와

지훈아 시현이가 들고 있는 비타민 똑같이 찾아줄게. 기다려보자

지훈아 거기는 시현이가 먼저 앉은 자리니까 옆으로 가서 앉자

지훈아 시현이는 이제 낮잠 자러 갈 거야. 지훈이도 코 자고, 이따가 만나자

 

 위에 모든 지침을 한 번의 대꾸도 없이 바로 순응했다. 지훈이와 함께 생활한 지 4일째만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앞으로도 내가 힘든 날도 있고, 지훈이가 힘들어하는 날도 있겠지만, 중심을 잡고 애정을 가지고 일관되게 아이를 대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부모가 믿어주는 만큼 아이는 자랄 수 있다.

부모가 기다려주는 만큼 아이는 나아갈 수 있다.

부모가 애정을 주는 만큼 아이는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가 나를 믿어주고,

아이가 먼저 나를 기다려주고,

아이가 나에게 애정을 준다.

부모는 그렇게 아이와 함께 자라게 되는 것 같다.




2일차 치앙마이 플리마켓, 말 cafe, 협재해수욕장




3일차 올레시장, 천지연폭포, 올레안뜰 (흑돼지 돈까스)




4일차 항몽유적지 해바라기밭, 올레16일 코스




5일차 더럭초등학교, 옹포별장가든 (전복 삼계탕, 돔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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