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알람이 울려도 더이상 설레지 않는다면
홈쇼핑은 매주 일주일 단위로 편성표가 오픈되고, 그 방송에 맞는 PD, 쇼호스트가 캐스팅 된다. 캐스팅 발표는 수요일 오후이고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상품마다의 단톡 방이 만들어지고 미팅 시간 잡기 전쟁이 한바탕 치러진다. 특히 명절이라도 껴있는 주에는 미팅 시간도 치열하게 잡힌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수요일 저녁부터 쌓이는 카톡 메시지는 읽지 않아도 누가 어떻게 보낸 메시지인지 짐작이 간다.
짐작이 간다는 것. 예측 가능하다는 것. 이토록 안정적이게 들리고, 이토록 무료해 보이는 표현이 또 있을까? 이건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준 변화라기 보단 직장인의 삶이 시작되며 따라오는 고충인 것 같다. 가족, 친구, 썸남에게서만 오던 문자가, 취업한 순간부터 팀장님, 팀원, 협력사 사장님한테까지 오게 되는 현실이다.
생에 첫 휴대폰을 가졌을 때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나에게로만 연결될 수 있는 번호가 생겼을 때. 그리고 이 번호가 상업적인 용도로 노출되지 않은 순백의 상태일 때. 이 물건이 울리기만 해도 내 심장은 콩콩 뛰었다. 막 잠들려고 할 깊은 저녁에 울리기라도 하면 심장은 콩콩 정도가 아니라 미친 듯이 뛰기도 했다.
“자?”
무심한 듯 궁금한듯한 문자 한 통이 왔다. 이 문자 하나를 보내기 위해 몇 번이고 망설였을 손길을, 몇 번이고 내쉬었을 한숨을 생각하니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 답장을 뜸 들였던 적도 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허공에 발차기만 수차례 하는 귀여운 모습도 그려진다.
처음 휴대폰을 갖게 되니 청각만 자극하는 ‘소리’ 알람이 아닌 짜릿하게 메시지가 왔다는 걸 알려주는 ‘진동’이 신기하고 좋았다. 주머니 속에서 끝나야 할 떨림은 가슴 한편으로 전해졌고, 수신함에 도착한 [새로운 메시지]는 보기만 해도 설렜다.
그땐 당연히 가까운 사람들만이 내 번호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울림이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 상관없이 내가 기다렸던 문자일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인터넷, 스마트폰, SNS 등등.. 뭐든지 넘쳐나는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말과 글과 안부가 소중했던 시절이었다.
누군가에게 외워지기도 했던 내 전화번호는 이제 그저 그런 정보에 불과하다. 아니, 마케팅에 종사하는 누군가에게 단돈 50원에 팔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늘어난 업무 관련 연락에 카톡 알람이 주는 로맨스는 가물가물해진 지 오래이다. 내 월급이 마치 그들이 내는 월세라도 되는냥, 내 전화번호에 세 놓고 연락하는 회사 사람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이제는 핸드폰이 울리는 게 무섭다. 누가 이렇게 똑똑한 걸 만들어서는 길을 걸으면서도, 화장실 볼일을 보면서도 업무처리를 할 수 있게 만들었을까. 로맨스 반, 회사 업무 반 정도만 돼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일이 내 삶의 로맨스를 잠식시키지 않도록 ‘워로밸’(워킹 & 로맨스 밸런스)을 잘 맞춰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특히 이제 막 취업에 성공한 젊은이들!
회사 최종 합격 문자가 최근에 받은, 다시는 없을 가장 설레는 문자가 되지 않길 바란다. 설레고 떨리고 재미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길 바란다. 낭만적이기 어려운 요즘이지만, 그런 마음조차 일부러 지우지 않길 바란다.
우리 인생에서 로맨스가 주 장르는 될 수 없겠지만, 어느 드라마의 제목처럼 별책부록으로라도 따라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