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깡따구 이야기
끝내 가을이 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더위가 가시는 걸 보니 저무는 해처럼 나도 저물어 드는 거 같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버린 마흔 중반. 이 나이에 여름이 가는 게 뭐 대수인가. 날씨 따위 시원해지는 게 뭐 어떻단 말인가. 금방 바람이 차가워질 걸 생각하니 옷장에 마땅히 꺼내 입을 니트가 있던가 하는 생각뿐이다.
인생이 언제나 내 편이고 하루하루 패기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내 몸뚱이 하나 어디에다 던져놔도 살아낼 자신이 있었다. 말라깽이 여자아이였지만 스스로 깡따구 있다 생각했다. 대기업 회사 면접을 볼 때 ‘나의 장점’을 물어보는 면접관에게 ‘아무리 무거운 것도 잘 들어낼 수 있다.’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대답했던 나였다. 비쩍 말랐다고 무시할까 봐 다른 남자 지원자들에게 밀리기 싫어 악을 쓰던 나였다. 서울대 나온 남자직원보다 내가 더 사회에 쓸모가 있다고 여기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내 아래로 깔아버리는 건방진 20대였다.
그 넘치는 깡따구로 남는 시간 없이 열심히 살았다. 교복 갈아입는 시간이 아까워 교복을 입고 먹고 자며 공부했던 고3을 지나 대학에 가서 나는 열심히 놀았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성격이었다. 매일 놀고 매일 공부했다. 난 스스로 장차 뭐라도 돼야 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풉, 웃음이 난다. 그런 나의 진짜 꿈이 뭐였는지 생각하면. 비밀이지만 사실 결국 난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한 가정을 지키는 엄마이자 아내.
10년도 채 안 되어 난 아이 엄마가 되어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밥을 짓는 가정주부다. 그토록 열심히 학원을 다니며 자격증을 따고 영어공부를 하고 대학을 졸업했지만 지금 내 인생에 가장 도움을 주는 건 운전면허증 뿐이렸다.
나는 아들들한테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돼야지.’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럼 엄마는?’이라는 질문이 돌아올까 봐 두려워서이다. 그래서 엄마는 훌륭해졌어?라고 묻는다면 받아칠 자신이 없다. 그보단 ‘지금 공부해야지 이 정도라도 먹고사는 거야.’라는 말이 더 맞는다.
그렇게 허투루 보낸 날 없이 아등바등 열심히 살았음에도 이 나이가 되어보니 남는 후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 내 이름 석 자 남길만한 곳이 있는가. 학교 가정통신문에 엄마 이름 쓰라고 할 때 말고 내 이름을 적을 때가 있던가.
저 산 너머로 지는 해를 보고 있자니, 올해가 다 지나가게 생긴 10월을 맞이하자니, 이런저런 생각들로 영 마음이 불편하다. 아이들 성공이 곧 내 성공인 삶을 원했던가. 그마저 아들놈들 성공하면 다행이지. 맞벌이 아들 손주 봐주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힌다.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아니지 ‘건강하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 인생은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 것일까. 종착지가 가까워져 마음이 조급한데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이렇게 밥만 짓다 늙어빠진 뒷방 늙은이가 되긴 싫다.
어차피 애들 결혼까지 시키면 노후준비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에라 모르겠다 내 멋대로 살아버리자.
이만치 살아보니 서울대 나온 남자가 나보다 똑똑하고 돈도 잘 벌더라. 역시 영어는 학원 다니며 공부한 나보다 유학 다녀온 애들이 더 잘하더라. 인생은 뜻대로 안 되더라. 다 운빨이더라. 정직하게 공부만 한 애들은 지금도 정직하게 전세 살더라. 조금 엇나가고 비뚤어지면 어때. 그런 애들이 건물 샀더라.
어찌 보면 초등학생 때부터 꿈이 현모양처였던 나는 이미 꿈을 이루고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현모양처라는 게 마흔 줄에 이렇게 사람 마음을 헛헛하고 기운 빠지게 하는 건 줄 미리 알았다면 나는 애초에 꿈을 바꿨을 것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세계적인 작가’등으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고 하지만 인간적으로 마흔 중반은 너무 늦지 않았는가. 시간을 내 마음대로 멈출 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면, 그렇지만 남아 있는 깡따구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지금 나는 그 일을 하기 위해 여기에 앉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