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야기
마지막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털어 넣고 서울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륙 전 비행기 안은 소란스러웠다. 징징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탄 젊은 부부, 몸집 만한 짐을 짊어진 등산복 차림의 아저씨 아줌마들, 하나같이 요란한 여행이라도 끝낸 듯 피곤에 지친 얼굴들이었다. 소영은 위스키라도 원샷한 것처럼 몸이 스르르 녹아내려 의자에 아무렇게나 기대고 눈을 감았다. 비좁은 이코노미석이지만 옆 사람이 타기 전에 잠들면 그만이었다.
아직도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렸다. 진짜 위스키라도 한 잔 해야 잠이 올 모양이다. 좀처럼 잦아들 줄 모르는 승객들의 소리에 멀미가 올라올 것 같아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가 바닷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걸 보니 며칠 동안 눌러왔던 눈물이 소영의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들의 기숙사에서 전화가 온 건 며칠 전 저녁이었다. 아들이 들고 있던 커터칼로 친구를 찔렀다는 사감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소영은 하얘지는 머리를 겨우 붙들고 선생님께 물었다.
“영민이는 괜찮은가요?”
소영이 알고 있는 영민이는 커터칼로 친구를 찌를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들고 있던 칼을 자기 몸에 꽂아버리는 게 더 말이 되는 아이였다. 사감 선생님은 영민이를 데리고 있으니 빨리 기숙사로 와달라고 하셨고 소영은 다음 날 새벽 첫 비행기로 제주도로 갔다.
기숙사에 도착해 영민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소영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두 눈에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 차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 아이가 칼로 친구를 찔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영민이가 찔렀다는 그 아이 부모님은 이미 아침부터 교장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영민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볼 새도 없이 교장실로 뛰어갔다.
그 아이의 이름은 상철이라고 했다. 다행히 상철이는 칼이 피부에 살짝 긁힌 정도라 상처가 생기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소영이 만난 상철의 부모님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소영에게 뭐라고 소리라도 질렀으면 죄송하다고 빌기라도 했을 텐데, 그쪽 부모님은 소영을 먼저 다독여주었다.
“영민이 어머님, 많이 놀라셨지요. 저희도 어젯밤에 전화를 받고 어찌나 놀랐는지... 아이들끼리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직 이야기를 제대로 못 들으셨을 텐데 영민이랑 한번 대화를 나눠보세요. 저희는 상철이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추후 이야기는 경찰서에서 하시죠.”
“네? 아... 네, 너무 죄송합니다. 상철이는 괜찮은가요? 저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찬찬히 알아보고 곧 다시 뵙겠습니다.”
상철 부모님을 만나고 나니 소영은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막무가내로 남의 아이 탓만 하는 몰상식한 부모 같지는 않았다. 소영은 확신했다. 영민이가 칼을 휘둘렀을 때에는 이유가 있을 거였다. 영민이를 데리고 근처 호텔로 갔다. 아무 말 도 없이 엄마 눈치만 보고 있는 아이를 침대에 앉혀놓고 소영은 심호흡을 한번 크게 했다.
“영민아, 네가 상철이를 커터칼로 찔렀니?”
“아니.”
아니라고 말하는 영민이의 표정은 단호했다. 찌르지 않았다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소영은 영민이의 두 손을 잡고 고개를 떨구었다.
“지금 네가 칼로 상철이를 찔렀다고 이렇게 난리가 났는데 아니라고? 그럼 안 찔렀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어?”
“아니.”
“영민아, 지금 조금 있다가 경찰서에 가야 해. 거기에 가면 경찰 아저씨들이 영민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물어보실 거야. 그때 영민이는 거짓 없이 솔직하게 모든 걸 다 대답해야 해. 알지?”
“응,”
“그럼, 우리 여기가 경찰서라고 생각하자. 엄마를 경찰 아저씨라고 생각하고 엄마가 다시 질문해 볼게. 영민아, 영민이가 기숙사에서 칼을 들고 있었어?”
“응.”
“칼을 들고 뭐 하려고 했어?”
“옷에 실이 튀어나와서 자르려고.”
“아, 근데 그 옆에 상철이가 있었어? 혹시 실을 자르다가 상철이가 실수로 칼에 맞은 거야?”
“아니, 그건 아니야.”
“그럼 상철이는 옆에서 뭘 하고 있었어?”
“내가 옷을 벗어서 칼로 옷에 있는 실을 자르고 있는데 걔가 내 배가 뚱뚱하다고 놀렸어.”
소영은 여기까지 듣자 온몸의 피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다시 한번 영민이의 손을 꼭 잡았다.
“아... 그렇구나, 옷을 벗고 있어서 상철이가 네 배를 봤겠구나. 뚱뚱하다고 뭐라고 놀렸어?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
“........”
“영민아, 말하기 싫어도 꾹 참고 엄마한테 말해 줘야 해. 혹시 상철이가 먼저 잘못한 거면 경찰 아저씨도 아셔야 하니깐.”
“상철이가... 상철이가 내 젖꼭지가 자기 이모를 닮았다고, 깐죽거렸어. 자꾸 내 젖꼭지를 만지려고 해서, 팔꿈치로 밀었어. 근데 내가 알아. 칼로 찌르거나 칼이 닿지는 않았어. 걔가 왜 내가 자기를 칼로 찔렀다고 하는지 모르겠어.”
영민이는 울먹이면서 힘겹게 한 마디씩 내뱉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소영의 마음은 이미 갈가리 찢겨지고 있었다.
“아이고, 내 새끼... 그랬구나. 알았어.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 영민아.”
많이 놀랐을, 어쩌면 많이 억울할 우리 아들을 지켜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소영은 핸드폰에서 영민이와 같은 기숙사의 동훈이 엄마의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학교 행사 때 몇 번 얼굴을 본 게 다인 엄마이지만, 왠지 동훈이 엄마는 상철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동훈이 엄마는 소영에게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둘이 만나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할까 봐 조심하는 눈치였다. 작은 케이크를 사들고 간 동훈이의 집 앞에서 소영은 고개를 똑바로 들고 어깨를 쭉 폈다.
“우리 아들을 지켜내야 해.”
동훈이 엄마의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상철이라는 아이는 원래 아이들을 돌려가며 놀리고 괴롭히는 아이라 기숙사에선 다들 피하는 친구이다. 상철이의 평소 행실 때문에 언젠가 이런 일이 터질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영민이가 이번에 새로 들어와서 아마 타깃이 된 것 같다. 상철이가 놀렸을 수는 있는데 영민이가 진짜 칼로 찔렀다면 일이 많이 커질 것이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였다.
“그런데 영민이 어머니, 제가 동훈이한테도 물어보고 기숙사 친구들 몇 명한테 물어봤는데요. 영민이가 상철이를 칼로 찌르는 모습을 본 아이가 한 명도 없어요. 영민이가 안 찔렀다고 하면 한번 더 자세히 알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상철이 걔가 거짓말을 안 하는 아이는 아니라서....”
‘뭐라고? 본 애가 없다고?’
소영은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목격자 한 명 없이 피해자의 진술로만 지금 우리 아이를 가해자로 몰아간다는 것인가. 사감 선생님은 어찌 그리 단호하게 우리 아이가 칼로 찔렀다고 나에게 전달했는가. 피가 머리로 솟구쳤다.
그날 저녁, 경찰서에서 상철이와 상철이 부모님을 만났다. 상철이의 얼굴을 마주한 소영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팔에 두른 저 붕대를 당장 어디 한번 풀어보라고 하고 싶었다. 아이들과 부모님까지 조사가 이루어졌다. 소영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죄 없는 우리 아들이 누명을 쓰게 둘 순 없었다.
‘우리 아들이 가해자라고? 웃기는 소리 하네.’
모든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기운이 다 빠져버린 영민의 얼굴은 소영에겐 이 세상을 다 잃은 절망이었다. 설움인지 억울함인지 모를 감정이 복받쳐 아들을 힘껏 껴안으며 소영은 속삭였다.
“우리 아들이 그럴 리가 없는데... 엄마가 몰라줘서 미안해... 그런데 영민아. 상철이가 칼로 찔렸다는 얘기는 누가 누구한테 한 거야? 경찰아저씨한테는 잘 얘기했어?”
-영민의 이야기-
난 맹세코 상철이를 찌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지금은 상철이를 진짜 찌르고 싶은 마음이다. 나쁜 자식. 내 배를 임산부냐고 놀리고 내 젖꼭지를 툭툭 치며 자기네 이모랑 똑같다고 놀리는 걸 옆에 있던 아이들이 다 들었다. 아이들은 상철이에게 하지 말라고 그만 놀리라고 말렸지만 그 자식은 멈추지 않았다. 젖꼭지를 건들지 못하게 팔꿈치로 툭 밀어냈는데 상철이 그 자식이 으악 소리를 내며 의자에서 떨어졌다. 누가 봐도 일부러 떨어진 거였다. 난 그만큼 세게 밀지도 않았는데...
기분이 좋지 않아 내 방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있었다. 몇 분 후 상철이 따라 들어오더니
“야 김영민, 나 커터칼 좀 빌려주라. 너 아까 쓰던 거 있잖아.”
“없어. 너 같은 새끼한테 빌려주기 싫어.”
“킥킥 아 그래? 알았어. 이 돼지 새끼야.”
상철이가 문을 쾅 닫고 나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영민이가 나를 커터칼로 찔렀어. 아!!! XX 아파!!!”
-소영의 이야기-
아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아들이 잠들고 난 뒤 호텔 로비에 앉아 그날 저녁 기숙사에서 있었던 일을 수십 번도 넘게 머릿속으로 재생하고 있다. 아무리 돌리고 돌려보아도 상철이가 우리 아들을 놀려야 할 이유는 없었다. 기숙사에서 외롭게 버텼을 영민이 생각에 울컥하다가도 화가 치밀어 억장이 무너진다. 엄마는 강해져야 한다던가. 아빠 없이 자란 영민이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이 세상 그 자체일 테니, 나는 다른 엄마들보다 두 배는 더 강해져야 하겠지.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지도 못하면서 일하러 간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게 할 수는 없었다. 텅 빈 집에서 혼자 밥 먹는 아들이 안쓰러웠고 일하고 돌아온 엄마에게 밝게 웃어 보이는 아들의 모습은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결국 나는 아들을 기숙사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에 고민도 없이 웃으며 동의해 준 너였다.
엄마와 세상에 둘도 없이 지내던 어린 아들을 기숙사에 혼자 보내 던 날이 생각난다.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날 제주도 학교 앞 호텔에서 우리 둘은 손을 꼭 잡고 누워 마지막 밤을 붙잡고 있었다.
“영민아, 내일부터 엄마 없이 잘할 수 있겠지? 거기 좋은 친구들도 많고 무엇보다 기숙사 밥이 진짜 맛있대.”
“응, 당연하지. 그런데 엄마 제주도에 주말마다 나 보러 올 거지?”
“그럼~ 엄마 영민이가 전화하면 언제든지 내려올 거야. 비행기도 매일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기숙사에서 밥도 많이 먹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고 밝은 목소리로 통화할 때마다 나는 영민이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린것을 혼자 떨궈놓은 엄마의 죄책감이 마음 한편에 묵직한 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짐을 덜어내지 못한 채, 나는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내고 있었다.
모든 게 다 잘 되고 있다고 믿었었다. 지금은 이렇게 떨어져서 지내지만 결국 다 잘 될 거라고 스스로 다독였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여자 혼자 아들을 키워낸다는 게 쉬울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남들보다 편하게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세상에 남겨진 우리 둘이 행복해지면 되는 거였다. 어디서부터 잘 못된 걸까. 기숙사 밥이 맛있다며 그 지옥 같은 곳으로 아들을 떠민 나라는 여자에게 화가 치밀었다.
“우리 비행기는 곧 서울 김포 국제공항에 착륙합니다. 안전띠를 매시고.....”
소영은 옆에서 곤히 잠든 영민이의 얼굴에 가만히 손을 올려 보았다. 아직은 솜털 같은 우리 아들.
이제부터는 엄마가 항상 옆에 있어줄게.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