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자기는 코만 성형하면 옆 라인이 딱 완성된다니깐. 일단 필러를 먼저 맞아봐 봐.”
“언니는 얼굴 크기에 비해 인중이 좀 길잖아. 입술 필러로 중안부를 좀 짧아보이게 하면 훨씬 예쁠걸?”
K언니는 만나면 늘 남의 얼굴을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게 취미이다. 남편의 성형외과가 자리 잡기 전까지 매일 병원에 따라다니며 익힌 노하우 덕분인지 동네 아줌마들을 앉혀놓고 남의 외모이야기를 밤새 이어갈 수 있는 여자였다.
다연은 이런 K언니의 신박한 외모 평가 혹은 성형 상담이 재미있었다.
거울을 꺼내놓고,
“언니, 나는? 나는 어디 해야 해요?”
하며 K언니와 함께 요리조리 자신의 얼굴을 뜯어보는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예정에도 없던 필러도 맞아보고 이마 보톡스도 맞아보았다. 생각처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비싼 시술도 아니었고 시술 후 K언니를 만나서 “잘됐네. 어쩌네” 하며 수다를 떠는 것도 나름 소소한 힐링이었다.
그런데 그 K언니의 외모는 완벽하느냐...
완벽이라는 표현보다는 우선 예쁜 축은 아니라고 해두자.
그러고 보니 다연은 K언니의 외모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워낙 남의 외모에 관심이 없는 성격이라 그런지 K언니의 그런 남의 외모 돌려 까기가 더 신선하고 재미났을지도 모르겠다.
K언니는 SNS의 인플루언서들의 얼굴을 캡처해서 단톡방에 툭 던져놓고 평가하는 것도 취미였다. 단톡방에는 거의 매일 다양한 얼굴 사진이 올라오며 외모 품평회가 열렸다.
“얘 또 쌍꺼풀 했나 보네. 연예인 누구드라. 그 전수라 닮지 않았어? 10년은 늙어 보이는데 왜 댓글엔 다 동안이라고 칭찬뿐인 거야? 얘도 나이 드니 어쩔 수 없구나... 진짜 너무 못생기지 않았니?”
“얘 얼굴 좀 봐 완전 남상이야. 나이 들수록 성형을 너무해서 피부가 다 쳐졌네 아주. 아휴, 꼴 보기 싫어라.”
“나 얘 청담동에서 실제로 봤는데 사진보다 뚱뚱하더라? 보정을 얼마나 하는 거야. 운동하는 사진 맨날 올리던데 다 뽀샵인가 봐~”
저녁 시간에 드라마를 보면서도 연예인들의 외모품평회는 시작된다.
“얘들아, 지금 티비 좀 틀어봐. 이제니 이번에 주인공 맡은 드라마 있지? 그거 나오는데 얘 또 쌍수 재수술했네. 아직 붓기도 다 안 빠졌어. 아우, 징그러워!”
“그러니깐 언니. 그래도 피부는 탱탱하네. 쟤네 부부사이가 그리 좋다더라.”
"아휴, 나는 엊그제 미용실 다녀왔는데도 우리 남편은 머리를 볶았는지 잘랐는지 알지도 못하더라. 의미 없다 의미 없어."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아줌마들의 단톡방은 남의 외모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K언니가 단톡방에서 걸쭉하게 뿜어대는 외모평가가 어찌나 웃긴지 다연은 깔깔거리다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남의 얼굴을 헐뜯는 그 시간들이 묘하게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 날 아침, 다연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모닝 러닝을 했다. 그녀는 자꾸만 살이 불어나는 중년의 위기를 어떻게든 극복해 보고자 몇 년째 매일 운동 중이다.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늘어지는 살과 쳐지는 몸뚱아리를 가진 중년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땀을 흠뻑 쏟은 뒤 샤워를 하고 얼굴에 팩을 올리고 나니 기분이 상쾌했다. 그녀의 입가에는 노랫가락이 저절로 맴돌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구름 한 점 없이 투명한 하늘은 너무 예뻤다. 아름답고도 평화로운 그 하늘을 다연은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미국에 유학가 있는 큰아들이 생각나 핸드폰을 들어 하늘을 찍었다.
‘아들~ 오늘 서울 하늘 참 이쁘지?’
닭가슴살과 호밀빵을 씹어먹으며 소파에 벌렁 누워 핸드폰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줌마들의 단톡방에 숫자 +158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씹고 있던 호밀빵이 목에 콱 막히더니 오늘은 +158을 누르기가 싫은 격렬한 감정이 일어났다. 또 누군가의 얼굴을 씹어대겠지. 나의 이 완벽한 오전 시간을 남의 얼굴이나 헐뜯으며 보내기가 싫어졌다. 다연은 핸드폰을 내동댕이 치고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천천히 스며들어가는 팩을 톡톡 두드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다연은 요즘 점점 외모에 집착하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는 중이었다. 젊은 시절, 그녀는 남의 얼굴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를 대할 때 그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도 않았었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 팔자주름과 모공과 늘어지는 피부에 집착하는가.
20대 때는 몰랐던 그 탱탱한 피부의 고마움을 40이 넘은 지금에서야 깨달은 걸까. 아니면 젊고 예쁜 사람들을 질투하는 걸까. ‘예쁜 사람’의 정의를 코의 비율과 인중의 길이, 팔자주름의 깊이로 평가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남편은 다연의 웃는 모습이 예쁘다고 했다.
‘웃을 때 너의 완벽한 중안부 길이와 입술 두께가 마음에 들어.’
라고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매력이 있고 그 매력을 간직하고 살면 되는 것이다. 다연은 그 단순한 사실을 잊고 살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다연은 더는 K언니의 외모평가질에 동조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젊은 시절 그 사람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칭찬하던 내 모습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며칠 뒤, 가을 햇살이 부드러운 어느 날. K언니를 포함한 동네 엄마들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한남동 브런치 카페에서 만나 시시껄렁한 주제로 이야기나 해대는 모임에 슬슬 질령이 나던 참이었다.
‘또 연예인부터 인플루언서까지 외모 흉보다가 끝나겠지. 궁금했던 애들 영어 학원 정보나 좀 물어보고 와야겠다.’
브런치 카페엔 50대 언저리의 화장기 가득한 언니들이 속눈썹을 연장하고 머리는 고데기로 말아 한껏 꾸미고 앉아있었다.
“아우~ 언니 오늘 너무 이쁘다. 속눈썹 새로 했어?”
“아니 언니, 왜 이렇게 살 빠졌어? 오늘 그렇게 입으니깐 너무 날씬해 보여~”
자기들끼리 서로 칭찬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다연의 눈은 언니들을 하나씩 차례로 훑어본다.
파운데이션이 사이사이 끼어들어간 주름이 이제는 깊이 파여 도저히 펴질 것 같지 않은, 그렇지만 엊그제 보톡스 시술을 받아 본인은 주름이 팽팽하게 펴진 줄 알고 있는 D언니.
큰 사이즈의 니트를 헐렁하게 입었지만 깔깔 웃을 때마다 자꾸 니트가 들려 올라가 뱃살이 살짝살짝 보이는 H언니는 어제도 저녁은 단백질셰이크를 먹었다며 다이어트 중이랬다.
화장을 아이라인부터 립라인까지 꼼꼼히 하고 나타난 K언니. 남의 외모를 평가하는 대는 열과 성의를 다하면서 정작 자신의 얼굴은 살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K언니. 다연은 K언니의 얼굴을 처음으로 자세히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평범했다. 동네 슈퍼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그냥 그런 중년의 얼굴과 몸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엔 묘한 슬픔이 배어있었다. 젊은 시절의 생기발랄함은 사라지고 거울 속의 늙어버린 자신을 마주한 K언니의 모습을 상상하니 외모에 집착하는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누구의 아내, 혹은 누구의 엄마, 그리고 그걸 한데 묶어 아줌마라는 호칭을 부여받은 우리들. 자신의 존재가 이제는 희미해져 기억조차 나지 않는 중년의 우리.
우리가 유명인들의 외모를 뜯어보며 평가하고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지적하는 그 시간은 아마도 아이들과 남편을 돌보는 세월 동안 자신의 인생이 없어져버린 소녀의 텅 빈 마음을 채워주는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누군가를 헐뜯는 말들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자신의 잃어버린 세월을 부여잡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연은 K언니의 얼굴 보며 자기도 모르게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질투도 아닌, 비아냥도 아닌, 그건 아마도 나의 인생이 저물어 감에 대한 슬픔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