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을 밤

by 바다하나

“쿵! 쿵!... 쾅!”


대문을 누군가가 부서질 듯 세게 내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문 열어! 문 열라고!!! 에잇!!”


천둥처럼 울리는 쿵쾅 소리에 미숙의 가슴도 같이 쿵쾅 거린다. 엄마는 미숙의 두 귀를 막고 거실의 화분 뒤로 밀어 넣었다.


“여기 숨어있자.”


대문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철문을 내려치는 소리. 가래가 끓어올라 고함을 치는 소리. 하늘이 무너질듯한 그 소리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이러다 정말 대문이 부서져서 집 안으로 쳐들어올 것만 같았다. 엄마는 끝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소리가 잠잠해지자 엄마는 미숙을 꺼내주었다.


“이제 괜찮아.”


웅크리고 있던 몸이 사시나무 떨 듯이 떨려 제대로 걸어지지가 않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끌고 몇 걸음 걷다가 미숙은 주저앉고 말았다.

금방이라도 다시 되돌아와서


“요놈! 여기 있었구나!”


하며 미숙을 끌어내 잡아갈 것 같아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 눈물이 흘러 거실 바닥에 엎드린 채 흐느끼고 말았다.


“엄마, 왜 그랬어... 엄마... 흐흑흑흑”






미숙은 몸부림을 치며 잠에서 깼다. 베개에는 땀과 눈물이 흥건했고 미숙은 아직도 흐느끼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새벽빛이 스며들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벌써 며칠째 같은 꿈이다. 또래보다 유난히 몸집이 작았던 초등학교 4학년의 미숙. 그리고 늘 집에 있었던 엄마와 대낮부터 술에 취해 남의 집 대문을 발로 차고 다니던 동네 주정뱅이 아저씨.


그날은 햇살이 맑고 그림같이 예쁜 날이었다. 아마도 토요일이었던 것 같다. 아니면 일요일이었을까. 나른한 오후 엄마랑 둘이 거실에 앉아 사과를 먹으면서 색칠공부를 하고 있었다. 다양한 색깔의 어우러짐을 보며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던 미숙. 엄마는 옆에서 콩나물을 다듬고 계셨다. 고소하면서도 비릿했던 콩나물 냄새.


멀리서부터 술주정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창 밖의 공을 차고 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소리가 점점 미숙의 집에 가까워질수록 미숙의 가슴은 쿵쾅거렸다. 왜 그 아저씨를 말리거나 잡아가는 어른은 아무도 없는 건지 따지고 싶었다.


언제부터 그 주정뱅이가 동네에서 사라졌는지 미숙의 기억엔 없었다. 그날 일은 엄마나 미숙이나 입 밖으로 낸 적도 없이 잊혀져 있었다. 중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 그 동네를 떠나 어른이 된 지금.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한 번도 미숙의 기억에 등장한 적이 없는 그 술주정뱅이가 요 며칠 미숙을 괴롭히고 있다.


이 선명한 기억이 미숙을 괴롭히고 있는데 가슴 어딘가에 콕 박혀 긁어내려 해도 손이 닿지가 않는다. 아무 잘못도 없는 어린아이가 화분 뒤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던 그 몇 분이. 제대로 걷지조차 못해 거실 바닥에서 울어야만 했던 그 작은 몸뚱이가. 자꾸 미숙에게 말을 걸고 있다. 미숙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침대에서 겨우 일어났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 선뜻하다.


미숙은 일어나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찾았다.


“엄마, 왜 그때 나를 일으켜주지 않았어? 왜 그 아저씨를 내쫓지 않았어. 우리 딸이 무서워한다고, 그만하라고 나가서 따지지 않았어? 흑흑.... 흐윽 흐윽..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화분 뒤에 숨어있을 때, 왜 나를 지켜주지 않았어. 왜... 난 쓰러져 일어나지도 못했는데, 미숙아 괜찮니라고 물어봐주지 않았어. 엉엉엉....! 내 엄마였잖아. 하나밖에 없는 엄마잖아. 엄마는 나를 지켜줘야 하는 거잖아.. 응? 흑흑흑... 흐어어어 엉엉엉.”


머리는 땀에 젖어 들러붙고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엄마는 그날의 일이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미숙아, 엄마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래도 그때 엄마가 지켜주지 않아서 미안해...... 아직도 애기구나. 우리 미숙이.”


미숙은 한참을 전화기를 붙들고 흐느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느 날 갑자기 가슴에 사무친다.


미숙의 인생은 꽃밭이었다. 어둠은 발도 들이지 못할 만큼 눈부시고 찬란했던 젊은 시절. 남들은 쓰디쓰다는 인생이 미숙만 편애하는 것 같았다. 바로 얼마 전까지는.


입 안 가득 달달했던 사탕이 오십을 훌쩍 넘은 미숙의 목구멍에서 쓴 맛으로 변하고 있었다.


억울한 인생을 산 것도 아닌데 자꾸 억울한 일이 떠오른다. 미운 사람을 마음에 품은 적도 없는데 쟤가 밉고 얘가 밉다. 매일 밤 가슴이 사무친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지나온 인생이 갑자기 슬프고 억울하다.


인생이란 그런 건가 보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느 날 갑자기 가슴에 사무치는 것.


달달한 꽃밭인 줄 알았던 쓰디쓴 인생.


새벽부터 여든이 가까운 엄마에게 쏟아내고 나니 손이 닿지 않던 콕 박혀 아픈 부위가 조금은 작아지는 것 같았다.


미숙은 하루 종일 해가 넘어가도록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었다. 저물어가는 가을밤이 마치 자기 자신인 것 같아 불현듯 애처로워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어릴 때 엄마랑 같이 부르던 노래가 생각나 가만히 읊조린다. 화분 뒤에 숨어있던 어린 미숙의 손을 꼭 잡은 채로.



가을밤 외로운 밤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 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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