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줌마

by 바다하나

“오운완!”


기분이 째진다. 정민은 어플을 켜고 운동 칸에 체크를 꾹 누르며 소리를 질렀다.

30일 연속 운동하기 미션을 클리어한 것이다.

매일 팔운동, 다리 운동 등 그날그날 어플에서 시키는 운동을 클리어하면

어플이라는 녀석이 포인트도 주고 칭찬도 마구마구 해준다.


“와우! 대단해요! 당신의 꾸준함에 박수를!”

땀으로 젖은 운동복을 입은 채로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본다.

몸무게는 그대로지만 분명 몸매 라인이 달라진 것이 보였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어 SNS에 올린다.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젊고 예쁜 날.’


이라는 멘트와 함께.


내년이면 앞자리가 바뀌는 49세 정민은 요즘 운동과 식단관리를 하며 ‘저속노화’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구부정하고 축 쳐진 50대를 맞이하는 것은 상상하기만 해도 우울한 일이다.


매일 아침 공복에 올리브유와 레몬즙을 마시고 하루에 삶은 달걀 두 알은 빼놓지 않고 먹는다.

빵이나 라면, 과자를 먹는 친구들을 보며 다짐한다.


‘10년 뒤에 어떻게 다른지 두고 보자고.’


꾸준히 관리를 한 덕분인지 모임에 나가면 “날씬해졌다”, “동안이다”는 칭찬을 꽤 듣는 편이다.

정민도 이제 막 노화가 시작된 또래에 비해 생기 있고 탄력 있는 자신의 몸이 만족스러웠다.


몸매와 외모에 자신이 붙기 시작하니 옷을 입을 때에도 점점 과감해졌다.

올여름엔 민소매도 과감히 입어보고 몸매가 드러나는 살짝 붙는 원피스도 구매했다.

50이 넘어가면 점점 이런 옷은 민망해서 못 입을 텐데 앞자리 바뀌기 전에 실컷 입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더 꾸미고 더 예뻐지자 싶었다.


운동 후 백화점에 수선 맡겨놓은 원피스를 찾으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푸른색의 하늘하늘한 쉬폰 원단 민소매 원피스는 정민의 맘에 쏙 들었다.

과감히 드러낸 어깨라인과 팔 라인이 딱 정민이 원하는 모양으로 완벽하다.

운동을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다.

다음 날 모임에 입고 나갈 생각에

오후 내내 다시 30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역시나 모임에서는 정민의 날씬한 팔과 그에 어울리는 쉬폰 원피스에 엄마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어머, 너무 예쁘다. 누가 곧 50살이라고 보겠어. 30대 같아, 정민아.”

“그러게 운동 열심히 하더니 정말 멋지다!!”


“나도 이렇게 먹지만 말고 운동을 해야 하는데.... 열정이 정말 대단해~!”

이거다. 바로 이 기분!

먹고 싶은 걸 참고, 귀찮은 운동을 매일매일 해낸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또래 엄마들에게 인정받은, 그 들보다 더 노력해서 얻은 이 젊음이라는 선물!

이렇게만 꾸준히 노력한다면 환갑이 온다고 해도 두렵지가 않을 것 같았다.

모임에서 돌아온 정민은 기분이 한 껏 들뜬 채로 목욕탕에 갔다.


락커룸에서 옷을 벗고 있는데 5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들어왔다.

“어머~ 귀여워라. 몇 살이야?”


“5살이요.”


쑥스러운 듯 손가락 다섯 개를 쭉 펴면서 대답하는 아이가 너무 귀여웠다.

그런데 곧바로 정민의 귀에 들린 소리,


“엄마, 저 함머니 다리에 점이 있어.”


뭐? 할머니??? 정민은 자기 다리에 있는 점을 한번 보고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엄마 뒤로 숨었다.


“아하하하하....”


이번엔 아이의 엄마가 더 쑥스러워했다.

“어머, 호호호호. 나 아줌마야, 할머니 아니야~~”


정민은 멋쩍어하는 엄마에게 쿨하게 웃어 보이며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거울에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비추어보며 스쿼트를 좀 더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역시 힙이 탄탄해야 예쁘단 말이지.’


냉탕에 들어가서 스쿼트 자세를 잡고 하나, 둘. 하나, 둘. 앉았다 일어났다,

한참 운동에 집중하고 있는데,

좀 전의 그 아이가 냉탕 앞에서 정민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냉탕으로 들어오고 싶은데 망설이는 모양이었다. 스쿼트를 멈추고,


“아가야~ 괜찮아. 들어와도 돼.”


“고맙습니다. 함머니.”


“.................”


‘할머니? 할머니이?? 아직 50살도 안된 나한테 할머니?’

참을 수가 없었다.


‘나 오늘 30대 같다는 소리 듣고 왔는데? 너 애 둘 낳고 이렇게 탄력 있는 할머니 봤니?

이렇게 피부 탱탱한 할머니 봤어? 봤냐구!!!! 나 오늘 탄수화물도 안 먹었거든! ’

당장 아이에게 쏟아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냉탕에 있는데도 온몸에 열불이 오른다.

정민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무서운 얼굴로 아이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나지막이 그러나 단호하게 속삭였다.


“야, 나 할머니 아니라고 했지!”

아이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아줌마~ 해봐.”


“아. 줌. 마~”


“그래, 그거야. 아줌마.”


또박또박 말하는 ‘아줌마’ 소리에 정민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찬 물을 얼굴에 끼얹고는 냉탕 한가운데로 가서 다시 스쿼트를 시작했다.

아이가 정민을 빤히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초롱초롱 한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함..... 아니, 함줌마, 멋있어여.”


‘함줌마? 요 꼬마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네.’

정민은 일어나서 수건을 두르고 거울을 보았다. 어딜 봐서 할머니란 말인가.

여전히 운동으로 잘 잡힌 어깨와 팔 라인이 보였다.


‘상처받을 게 뭐 있어. 내 만족이지. 함줌마. 그거 괜찮네.’


정민은 거울 속의 ‘함줌마’를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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