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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Nov 22. 2020

탄자니아 통신

FUNGATERA

“푼가 테라”

“푼가 테라”


앞서가던 찰스는 ‘푼가 테라’를 외치며 손을 내민다. 

그의 말에 의하면 테라는 자체 동력을 갖지 못한 컨테이너를, 푼가는 엔진을 가진 차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동력을 가진 차가 그렇지 못한 컨테이너를 끌고 가는 것이다. 손에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간다는 뜻도 되고 힘내라는 격려의 말로 쓰이기도 한단다.


지금 음베야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루사조는 음베야 산에 오를 팀을 구성 중인데 함께 하겠냐는 전화를 해왔다. 우리 집 창을 통해 매일 보는 풍경이기도 했고, 집수리 때문에 지쳐있기도 하던 터라 흔쾌히 그러마, 고 대답했던 것이다. 


새벽 여섯 시가 되자 전화벨이 울렸다.

도착했으니 내려오라는 루사조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경쾌하게 울린다. 계단을 내려가자 그녀의 자동차가 전조등을 켠 채 서있다. 빛이 소리 없이 어둠을 잠식하나 싶더니 어느새 사위는 밝은 빛으로 채워진다. 참 순식간이다. 어둠이 내리는 것보다 빠르다. 


산행 초반에는 영 힘이 든다. 일행 중 몇명과 뒤로 처진다. 그 중 한 둘은 뒤처진 일행을 위해 속도를 줄여준 것이리라. 

나는 늘 그렇듯 초반에는 힘을 못 쓰다, 조금씩 신체 리듬이 흐름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몸이 가뿐해지며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매사에 늦되다.

나를 위해 보조를 맞춰주던 찰스와 자연스럽게 팀이 되어 일행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찰스는 내가 제일 걱정이었는데 한국 여성의 강인함을 알겠다며 은근슬쩍 추켜 세운다.

시간이 갈수록 여러 팀으로 나눠지고, 선두 그룹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여기저기서 ‘요~~~~~ 요요요요요, 요~~~~요요요요요’하는 메아리 소리가 요들 송처럼 가볍게 나풀거리며 산을 간지른다. 나는 우리네 식으로 손나발을 불며 ‘야~~호’로 화답하자 그들도 나를 따라 ‘야~~호’를 외친다. 


여러 개의 작은 산봉우리를 넘고 넘어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사방이 산인데 고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정상은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인장 류가 자라고 있고,정상을 향해 완만하게곡선을 이룬 산등성이엔 노란색 야생화가 만발해 마치 유채꽃밭 같다. 계곡을 이루는 곳은 어김 없이 열대성 산림이 울창하다. 멀리에는세파족이 사는 마을이 제법 크게 자릴 잡고 있다. 그들은 양을 키우고 화전을 일구며 산다고 했다. 

일행을 기다리는 와중에 한 편에선 열심히 사진을 찍고, 한 편에선 동영상을 촬영하며 인터뷰까지 한다. 나에게도 폰을 들이대며 한국말로 한마디 하라고 재촉한다.

아프리카는 사진 찍고 찍히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대륙인 것만은 분명하다. 저렇게 저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긴 역사를 통해 기록할 언어를 갖지 못해 남의 나라 철자를 차용해서 쓰는지…


내려가는 길은 곡예다. 바위산은 그렇다 쳐도 한 발짝만 잘못 디디면 양쪽이 낭떠러지. 거의 기다시피 내려온다.

바위산을 겨우 벗어나 한 숨 돌리며, 한 시간 길어야 한 시간반이라 했으니 곧 마을이 나타나겠지 했는데 다시 새로운 능선이 저만치 앞에 보인다. 가까이 가니 앞서간 일행들이 미끄러지다시피 헤쳐나간 흔적만 있다. 엉덩이에 불이 나는 가 보다 하면, 잡목 숲. 두 팔을 휘저으며 길을 만들며 나아간다. 

주위가 점점 어두워질 무렵, 무릎을 삐끗했는지 시큰거리기 시작한다. 헛발질만 놓다 뒤뚱거린다.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잡는다. 까만 얼굴에 눈과 치아만 하얀 낯선 얼굴의 청년이다. 그의 도움을 잠시 받지만 여전히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는 메고 있던 가방을 뒤따라오던 동료에게 부탁하고 등을 내민다. 도리가 없다. 나 때문에 지연될 수는 없는 일. 염치불구하고 업힌다. 그는 마치 산토끼 같다. 한 걸음에 달려 내려간다. 


그는 동력을 가진 푼가. 나는 동력이 없는 테라다.

국부인 니에레레는 말했다고 한다.탄자니아는 아직 엔진을 켜지 못해, 유럽이 끌어주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지만, 시동이 걸리면 엄청난 속도로 달릴 것이라고… 이곳이 신의 축복을 받은 땅이란 것을 알아갈수록 그의 말은 설득력을 갖는다. 막내의 설음을 딛고 젊고 힘찬 대륙으로 태어날 그날. 나도 기다려 볼 것이다.



소피아

2016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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