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추적자
“선생님은 글감 사냥꾼이에요.”
어디를 가나 호기심을 갖고 글감을 찾는 나를 보며 필리는 말했다. 마감이 있는 글쓰기가 나를 그리 만드는 것인데, 보통은 사소한 일상에서 소재를 찾게 되지만, 특별한 일이 있으면 절대 놓칠 수가 없다.
일식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식을 보기 위해서라면 북극의 설원도 마다않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일식 추적자‘ 또는 '반그림자 애호가'라고 한단다. 나도 하루쯤 일식 추적자가 되어 보아도 좋을 듯하다.
루제와, 음발라리.
우주 쇼를 보기 위해 특수 안경을 쓰고 해바라기 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이곳에 오지 못한 사람들은 집에서 물그림자로 일식을 관측한다니 퍽이나 낭만적이다.
비쩍 마른 몸매에 키가 크고 옷차림이 독특해 눈에 띄는 마사이 사람들이 나무 꼬챙이에 끼운 갓 잡은 양고기를 장작불 주위에 둘러 바비큐 하고 있다.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며 야생의 삶을 사는 그들도 이런 날에는 장돌뱅이가 되기도 하나보다.
저만치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보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금줄까지 쳐놓고, 백인 두 명이 마치 북처럼 생긴 ‘스카이 워처’라는 장치를 통해 일식의 진행 상태를 스크린을 통해 중계하고 있다. 렌즈를 통과한 태양은 마치 달 같다.
열 시 방향에서부터 점점 야위어 가던 해가 종국에는 동그라미로 남는데 걸리는 시간만 두어 시간이다. 성질 급한 사람은 필름을 빨리 감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다. 칠흑 같은 밤하늘에 영락없는 금가락지가 떠있다. 팔을 살그머니 뻗어 두 손가락으로 길어 검지에 끼면 딱 맞을 듯하다. 한참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붉은 빛으로 타오르는 듯도 하다. 동그라미 하나만 달랑 남기고, 달이 해를 완전히 품어 버린 순간 공기는 투명하다 못해 서늘해지며 냉기가 흐른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린다.
잠시 머뭇거리던 달이 제 갈 길을 재촉하자, 네 시 방향에서 동그라미가 깨지는가 싶더니 다시 열시 방향에서부터 해는 살이 찐다.
우주쇼 장면을 한국에 실시간 생중계하던 중이다.
“지구가 좁지? 우주로 가려고?”
스마트폰을 통해 보내온 지인의 답신이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꽤 오래 전 일이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우주여행 상품을 팔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 되었다. 천문학적인 가격의 상품이었는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세계 부호 중의 한명이 선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친구와 그 여행의 가치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비교적 현실적이었던 친구는 짧은 순간의 호기심을 위해 거금을 투자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낯선 상황에 자신을 던지는 끊임없는 여행이야말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라고 믿기에 기꺼이 거금을 걸겠다고 했고.
일식은 일 년에 적어도 2회, 많으면 5회까지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특정 장소에서 일어날 확률은 평균 370년에 한 번. 내가 그 역사적인 순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건 단지 우연일까? 전날 밤 노무현 대통령이 나를 찾아온 꿈을 꾸었고, 임지에 파견된 후 꼭 한 달만의 일이다. 돌아오는 길, 잠시 버스에서 내려 렌즈 속에 담긴 해를 본다. 마치 낮에 뜬 보름달 같다. 참 예쁘다.
소피아
2016년 9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