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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그림 Oct 21. 2022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문자들 정리

-녹도문, 우서(雨書), 화서(花書), 용서(龍書), 전(篆)예(隸)

  

《환단고기》에는 아래의 기사가 나온다.  

   

《환단고기》〈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환웅천왕이 신지혁덕에게 명하여 녹도문으로 천부경을 기록하게 하셨는데 고운 최치원이 신지의 전고비(神誌篆古碑)를 다시 보고 첩(帖)을 만들어 세상에 전하였다.』     


여기서 신지는 벼슬 이름이고 혁덕은 사람 이름이다.

위 기사는 한 문장이지만 신지혁덕이 쓴 천부경과 최치원이 본 신지전고비는 다른 것이다.

왜냐면 신지혁덕은 ‘녹도문’으로 썼고 최치원이 본 비석은 ‘전(篆)’으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태껏 이 기사를 최치원이 녹도문을 보고 천부경 첩(帖)을 만들었다고 해석했기에 많은 혼란을 낳은 것이다.

즉, 최치원이 본 신지전고비를 쓴 신지는 혁덕이 아닌 다른 신지였다.     


개념 정리를 명확히 하기 위해 《환단고기》에 나오는 문자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먼저 신지혁덕이 썼다는 녹도문(鹿圖文)이 있다.

다음 신시 시대의 녹서(鹿書)가 나오는데 위의 녹도문과 같을 것이다.

다음 자부 선생의 우서(雨書)가 있고 치우 천왕의 화서(花書)가 있다.

다음 태호복희의 용서(龍書)가 있고 단군조선 때 신전(神篆)이 있다.

다음 부여 사람 왕문이 전서(篆書)가 복잡하다 하여 그 획수를 약간 줄여 부예(符隸)를 만들어서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 전서는 단군조선 때 신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시황의 진나라 때 정막이 사신으로 숙신에 왔다가 한수(漢水)에서 왕문의 예서 필법을 얻어 그 획을 조금 변경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팔분체(八分體)이다고 했으므로 이 전(篆)이나 예(隸)는 모두 지금의 한자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 가륵단군 때 삼랑 을보륵이 지은 정음 38자인 가림다(加臨多) 또는 가림토(加臨土)가 있다.    

 

앞서 신지전고비(神誌篆古碑)를 쓴 신지는 혁덕이 아닌 다른 신지였다고 설명했는데 여기에 보다시피 ‘전(篆)’이라고 분명히 적혀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한자{즉, 전과 예는 한자이다. 전(篆)·예(隸)·해(楷)·행(行)·초(草)서체.)를 제외한 나머지 글자(즉 녹도문, 우서, 화서, 용서)를 추적해 보겠다.

이 중 화서는 그 글자 모양이 《환단고기》에 아래와 같이 나와 있다.   

  

《환단고기》〈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배달 신시 때에 산목(算木)이 있었고, 치우 천왕 때 투전목(鬪佃目)이 있었으며, 부여 때 서산(書算)이 있었다.

(...)

전목(佃目)의 모양은 아래와 같다.』     

                                                          

                                                      투전목(전목 鬪佃目)



위에 나오는 산목, 투전목(전목), 서산은 단순한 숫자를 나타내는 글자이므로 앞서 문자 정리에 포함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자에 나오는 숫자가 한자의 일부이듯이 위 투전목(전목)은 치우 천왕의 화서(花書)의 모양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아마 글자가 화려한 것이 꽃을 닮았다고 해서 화서(花書)라 불린 것 같다.     


이제 남아 있는 모양을 알 수 없는 글자는 녹도문, 우서, 용서의 세 가지이다.

그런데 여태껏 이 세 가지의 글자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녹도문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기존에 녹도문으로 알려진 경상남도 남해 낭하리 각석은 아래와 같다.                                


경상남도 남해 낭하리 각석


남해 낭하리 각석은 홍산문명에서 발굴된 옥인장의 글자와도 닮았다.

특히 각석과 인장에 공통으로 보이는 글자가 있는데 ‘한자 代’ 형상의 이 글자는 필자의 견해로는 ‘환웅’을 나타내는 글자로 추정되었다.    

 

그 근거는 아래의 2가지이다.

① 고대부터 옥새는 왕권의 상징이었다. 바로 옥인장이 옥새이다. 그런데 신시배달국의 옥새에는 ‘환웅’이란 글자가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예를 들면 ‘자오지환웅’과 같은 것이다.

② 남해 낭하리 각석은 《환단고기》에 그 명문이 나오는데 “환웅께서 사냥을 나가서 삼신께 제사를 올리셨다”라는 것이다. 이 문장에 ‘환웅’이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남해 낭하리 각석에서 신시배달국 옥인장에 나오는 글자를 찾으면 되는데 ‘한자 代’ 형상의 글자가 이것이다.

이러한 ‘환웅명 옥인장’의 발굴도 홍산문명이 신시배달국임을 증명하고 있다.                                     


홍산문명 ‘환웅명 옥인장’


또한, 역시 녹도문으로 알려진 평양 법수교 아래에 있었다는 비문과 중국 산동성 백수현에 있는 창성조적서 비문이다.                                            


평양 법수교 비문과 중국 산동성 창성조적서 비문



위에서 낭하리 각석과 평양 법수교 비문을 비교하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평양 법수교 비문과 산동 창성조적서 비문은 한눈에 봐도 서로 닮았음을 알 수 있다.

위의 각석과 비문들을 모두 같은 녹도문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둘 중 녹도문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각석과 비문이 다른 문자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앞서 치우 천왕의 화서(花書)를 글자가 꽃 모양처럼 화려해서 붙인 이름으로 추정한 바 있다.

그렇다면 위의 각석과 비문을 앞서 글자의 모양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남은 세 글자인 녹도문, 우서, 용서 중의 한 글자라고 간주하고 그 모양으로써 대입해 본다면 어떨까?   

  

글자가 용 모양이라 용서(龍書)라 이름 붙여졌다면 남해 낭하리 각석이 이에 가장 가깝다.

그리고 글자가 비가 내리는 모양이라 우서(雨書)라 이름 붙여졌다면 빗방울 모양처럼 생긴 글자가 눈에 띄는 평양 법수교 비문과 산동 창성조적서 비문이 이에 가장 가깝다.     


그렇다면 우서와 용서의 실례를 찾았으니 《환단고기》에 나오는 문자 중 오직 녹도문만 그 실례를 찾지 못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환단고기》를 이용하여 역사를 연구하면 이렇게 재미가 있다.

이것이 다 《환단고기》가 매우 정확하게 잘 써진 사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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