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왕모는 삼신할머니
이두는 신라의 설총이 창제했다고 《제왕운기》 등에 전하나 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을 설총이 정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필자는 일중삼족취가 녹도문임을 찾아내는 과정에 이 녹도문에 이두와 같은 아재 개그 코드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두를 읽어본 사람들은 “도대체 왜 쉽게 한자로 쓰면 될 것이지 이리 어렵게 이두를 쓰지? 어차피 한자를 쓰는데 말이야”라는 생각을 다들 해봤을 것이다.
필자도 이 생각을 당연히 해봤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글자에 왜 이리 아재 개그를 담는지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하지만 녹도문을 써오고 이것을 만드는 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한자가 생기니 이것으로 이두도 만들어 본 것이다.
한자를 녹도문 만드는 식으로 한번 떠 꼬는 것이다.
이러면 아는 사람만 알게 쓸 수 있다.
이런 상위 계층의 유희 문화가 이두인 것이다.
이것이 상위 계층의 문화이므로 지명 등이 이 이두로 현재 남아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재미로 만들었다.
이런 이두를 수천 년이 지나서 해석해야 하는 후손들은 하나도 재미없지만 말이다.
여담이지만, 한민족은 9천 년 동안 아재 개그를 굉장히 즐겨온 것 같다.
이 아재 개그를 집대성한 사람이 신라인 설총이고.
아무튼, 간편한 한자가 만들어진 이후 한자는 기존 녹도문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었다.
이것이 녹도문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급속하게 사라진 주된 원인일 것이다.
녹도문인 일중삼족취나 월중섬여·토도 고구리 고분 벽화에 그려질 때 글자인 줄 모르고 전해 내려오던 관습처럼 도상의 개념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이것이 고구리 고분 벽화에서 녹도문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이유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고려와 조선 왕조에 들어와서는 태양 속의 수리를 닭으로 그리기도 하고 주작으로 그리기도 하고 목과 다리가 긴 물새로 그리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중국이 지어준 대로 불경스러운 이름인 ‘삼족오’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녹도문 재발견을 계기로 이를 ‘삼족취(세 발 수리 三足鷲)’로 정상화하는 것이 어떨까?
수리를 중국이 까마귀로 둔갑시킨 정황을 발견했는데, 이리는 어떨까?
우리 민족에게 까마귀만큼 이미지가 안 좋은 동물이 있다면 그것은 여우일 것이다.
여우에 관한 전설의 으뜸은 구미호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수리의 예로 이 구미호도 원래 구미랑(이리 狼)이었는데 중국이 구미호(여우 狐)로 둔갑시킨 것이 아닐까?
9라는 숫자의 상징성은 한민족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구환족, 구이 등.
여기에 같은 태양을 상징하는 수리는 삼족(三足)으로 신성성을 부여했으므로 이리는 구미(九尾)로 신성성을 부여했을 것이라면 충분히 말이 되는 것이다.
위 그림은 한나라 시기 서왕모 화상석인데, 서왕모를 중심으로 우리가 살펴봤던 일월을 뜻하는 녹도문에 나오는 구미랑, 토끼, 두꺼비, 삼족취가 모두 등장한다.
그런데 위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구미랑은 주둥이가 뾰족한 것이 구미호로 바뀌어 있고, 삼족취도 누가 봐도 까마귀 형상이다.
따라서 이것은 중국 관점으로 동물들이 둔갑하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호랑이의 이빨과 표범의 꼬리를 가지고 있다는 서왕모의 모습도 무언가가 둔갑하여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한민족 버전의 원래 도상에는 당연히 한가운데 삼신할머니가 그려져 있으리라 생각한다.
서왕모 전설은 삼신할머니의 중국 버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