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 통닭이 먹고 싶어 펑펑 울었다

아프리카 케냐까지 와서 무슨 대단한 일을 해보겠다고

by 바스락북스

2016년 6월.

케냐 살이 2개월째, 임신 4개월째

한밤 중에 깨어 끄억끄억 소리를 내며 펑펑 울었다.

양념 치킨이 미치도록 먹고 싶었다.

내 마음대로 먹고 싶은 양념 치킨도 하나 못 먹는 인생이라니!!!

인생의 의미고, 삶의 목표고, 함께 나누는 삶이고 뭐고 다 부질없게만 느껴진다.

다 필요 없고 난 달콤 짭짜름한 양념에 마늘맛이 강하게 풍기는 새빨간 양념 치킨이 먹고 싶을 뿐이었다.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한밤중에 일어나 펑펑 울만큼 무언가를 간절히 바랬던 순간이 몇 번이나 되었을까


나는 어느 나라를 가든 음식 때문에 스트레스받은 적이 거의 없다.

여행을 하면서도 굳이 한식을, 밥이나 김치를 찾아먹으려 애쓰지 않았고 웬만해서는 현지 음식이 내 입에 잘 맞았다.

케냐보다 더 사정이 열악했던 아프리카 말라위 시골 마을에 NGO해외 지부장으로 파견 나가 있는 동안에 나는 매일 저녁을 망고와 옥수수, 감자튀김으로 때우곤 했었는데 그때도 별 불평 없이 지내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나는 4개월 차 임산부였다.

호르몬이 미친 듯 불안정했었을 테고, 그것 때문에 마음도 몸, 입맛까지도 평정심을 찾기 쉽지 않았을 테지.

거기에다 낯선 나라에서 사업을 시작해보겠다고 맨땅에 헤딩을 열심히 하던 중이었다.

정부에서는 청년의 해외 창업이나 취업을 장려하고 독려한다고 그렇게도 광고를 하던데 내가 진짜로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을 받을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매일 인터넷을 뒤져가며, 여기저기 도움을 구해가며 현지에서 외국인 신분증을 만들고, 사업자 등록을 하고, , 통장을 개설하고, 워크퍼밋을 신청했다.

그 어떤 것 하나 내 계획대로 되는 게 없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케냐에서 사업자 등록을 하려면 외국인 신분증(Ailian card)이 있어야 한다.

외국인 신분증을 만들려면 광광 비자로는 불가능하고 워크퍼밋을 발급받야 한다.

투자자 신분으로 워크 퍼밋을 만들려면 사업자 등록증이 있어야 한다.

사업자 등록증을 받으려면 외국인신분증이...오마이갓!!!

게으른 투자청과 이민국 직원들은 배가 산더미만하게 나온 나에게 제대로 된 정보도 주지 않은채 여기로 저기로 뺑뺑이를 돌렸다.

" 그래서 외국인 신분증을 어떻게 만드냐고!!!"


결국은 등록비의 10배 가까이 뒷돈을 주고 워크퍼밋 없이 외국인 신분증을 만들었다. T.T

거기다 정식적인 절차대로 하면 발급기간이 2달이 될지 3달이 될지 모른다고 하여 급행비로 뒷돈을 더 얹어주었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 케냐.


그 어떤 과정도 예상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그러는 동안 알게 모르게 받는 스트레스가 대단했나 보다.

그 와중에 틈만 나면 빌린 차를 타고 이 동네 저 동네 가게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현지 적응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고 매일 저녁 스와힐리어 과외까지 받고 있었으니 몸도 마음도 적잖이 힘이 들었겠지?


케냐에 와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2개월간 지내며 한국 음식을 아예 먹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케냐는 한국식품을 파는 곳이 여러 군데 있어서(가격은 2~3 배지만) 한국 식자재를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국 마트에서 간장, 고추장, 참기름, 고춧가루를 떨어지지 않게 사다 놓기만 하면 웬만한 한식은 해 먹을 수가 있다.

단 문제는, 내가 뭘 먹고 싶건 간에 그 음식은 내가 직접 해서 먹어야 한다는 거다.

배달앱을 눌러 바로 내가 원하는 음식을 고르기만 하면 30분 내로 내 앞에 음식이 배달되는 한국이 아니었다.


여기는 케냐 나이로비.

뭐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레시피를 먼저 찾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 마트, 현지 시장, 중국 마트 등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식재료와 양념들을 사 오고 내가 직접 요리를 해야 한다. 난 요리를 잘하지도 못할뿐더러 취미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입덧을 하는 아내가 딸기가 먹고 싶어, 족발이 먹고 싶어, 복숭아가 먹고 싶어 말만 하면 남편이 어디론가 뛰어나가 그걸 사 온다는데...

케냐에서 내 남편이란 인간은 양념 통닭 먹고 싶어 펑펑 우는 아내를 눈 앞에 두고도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다. 나도 안다. 멀뚱멀뚱 쳐다보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한밤중에 나를 깨운 양념통닭은 내가 지금 누워있는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 케냐임을 일깨워 주었고, 앞으로 뭐든 내가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내가 스스로, 내 손으로 해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자각하게 만들었다.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 내 몸 세포 하나하나는 언제든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테고, 그럴 때마다 이렇게 펑펑 울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시간이 흐르고 배가 불러가는 속도만큼 커넥트 커피도 조금씩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가게 자리를 구했고, 인테리어를 시작했고, 워크퍼밋을 받아 드디어 한국에서 컨테이너를 띄웠다.

사람들은 케냐에서 사업을 시작하려면 최소한 준비 기간을 1년은 잡아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우리는 6개월만(2016년 9월)에 커넥트 커피를 오픈할 수 있었다.

물론 가게를 오픈한다는 건 고작 고난과 시련의 첫 단추를 채운 것일 뿐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지만...



케냐 살이 4년 차.

지금 나는 양념통닭뿐만 아니라 꼬리곰탕, 갈비, 김밥, 떡볶이, 탕수육, 짜장면, 돈가스 등 못하는 요리가 없다. 가끔씩 남편은 우리 사업이 망하면 한국음식점을 차려도 되겠다는 낯 간지러운 칭찬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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