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동업은 부모 자식 간에도 하는 게 아니랬어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해서 우리 부부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에 약 2달간 머물렀다.
여행가방 4개가 우리가 가진 짐의 전부였고 살림살이들은 아직 한국의 컨테이너 보관함에 보관되어 있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하셨던 사장님을 찾아뵙는 거였다. 인사도 드리고 앞으로의 일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멋진 정원이 딸린 주택은 예스러운 물건들로 가득했고, 두 명의 가정부가 부지런히 바비큐 파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기 냄새에 흥분한 강아지들은 넓은 잔디밭을 자유롭게 뛰어다녔고, 스피커에서는 팝송이 흘러나왔고, 우리는 와인을 마셨다.
'이게 바로 케냐에서 성공한 사업가의 삶이구만.'
싼 인건비 덕분에 케냐에서는 웬만한 중산층들도 가정부를 쓴다.
중산층 이상이라면 가정부에 운전수에 정원사는 기본이고 아이가 있는 집은 유모까지 쓰는 경우가 보통이다.
삶의 질만 따지자면 웬만한 선진국보다 훨씬 풍족하고 윤택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장님 부부는 진심으로 우리를 반겨주셨고 극진히 대접해 주셨다.
맛있는 양고기 바베큐를 배불리 먹고 알딸딸한 와인에 취해있을 무렵 사장님과 남편은 사업 이야기를 시작했다. 앞으로 케냐 커피 시장, 새로운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 그리고 투자계획.
사장님은 우리가 가져온 1억여 원의 자본금에 1억을 더 투자하겠다고 하셨고 50대 50의 지분을 갖는 동업을 제안했다. 사장님은 이미 30여 년 동안 케냐에서 사업을 하며 경험과 인맥을 가지고 계셨고, 남편은 커피에 대한 전문성과 최신 트렌드에 맞는 커피숍 운영의 노하우가 있으니 그리 나쁘지는 않은 제안이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케냐에서의 사업 정착을 위한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위험부담을 줄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동업"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말.
"동업은 부모 자식 간에도 하는 게 아니다! 또 한 번 동업을 했다가는 내 손에~~!"
형제간의 동업으로 집을 날려버리고 형제간의 우애마저 깨져버린 아빠 덕분에 엄마와 우리 가족에게 "동업"이라는 말은 죽어도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금기어였다.
무엇보다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커넥트 커피"의 미션과 비전에 대해 과연 30년간 케냐에서 다양한 사업을 해 왔던 사장님이 과연 동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커피 농부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세상을 연결하고자 하는 사회적 미션을 가진 커넥트 커피를 사장님은 인정하고 이해해 줄까? 회사의 미션과 비전을 공유하지 못하는 동업자와 사사건건 부딪치고 설득할 생각을 하니 시작도 전에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그날 우리는 그 어떤 아이디어도 진전시키지 못한 채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고 며칠간의 고민 끝에 "동업"은 하지 않는 걸로 결정했다.
우리는 독립적인 회사를 설립하고 사장님이 하고 계시는 커피 사업에 남편의 도움이나 노하우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 협력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다.
그런데 "동업"을 하지 않고 독립하겠다는 남편의 말에 사장님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사장님의 입장에서는 좁디좁은 케냐 커피 시장에서 "동업"을 하지 않는 사람은 경쟁자, 바로 내 밥그릇 빼앗아 먹는 "적"이 되는 거였다.
그 후로도 여러 번 사장님을 찾아갔고 부탁도 해보고 사정도 해보고 용서도 빌어 보았지만, 우리의 관계는 회복이 되지 않았다.
아! 우리가 너무 순진했다.
그때부터 맨땅의 헤딩이 시작되었다.
회사 설립은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통장은 어떻게 개설해야 하는 건지, 워크퍼밋은 어떻게 받는 건지, 에일리언 카드는 도대체 무엇인지 인터넷을 뒤지고, 케냐 투자청을 찾아가고, 한국 대사관, 코트라 케냐 사무소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앞뒤도 보지 않고 달려가 묻고 조사하고 공부했다.
4년의 시간이 지나 그때를 되돌아보면, 다시 생각해도 동업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건 잘 한 결정이었다.
우리는 사업의 시작 단계에서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하나에서 열까지 우리 손으로 방법을 찾아 해결했다. 그러는 동안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제대로 사업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를 찾아가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과 무지 때문에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뒷돈을 주거나 커미션을 주고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면, 동업자만 믿고 모든 걸 맡겼다면 시시 때때로 불거지는 문제들을 마주칠 때마다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렇게 시작된 맨땅의 헤딩은 사업을 시작한 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뭐든 그렇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은 해볼 만한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