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서는 아프면 안 돼!
갑상선 항진증 진단을 받다.
작년 초부터 몸에서 이상 증세가 나타나고 있었다.
무리했던 사업 확장에 코로나 사태까지 터져 이런저런 걱정에 잠이 잘 오지 않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감정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조금만 움직이면 몸이 피곤해져 30분이라도 누워있어야 했고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하면 팔, 다리가 침대 밑으로 쑤~욱 가라앉은 듯 무거웠다.
두통이 잦아졌고, 목 앞부분이 따끔따끔 아프기도 했고, 가끔씩은 양 쪽 귀가 터질 듯 아파와서 한참을 손으로 꾹꾹 눌러줘야 했다.
그럼에도 어디가 부러지거나 찢어지거나 눈에 보이는 뚜렷한 증상이 있었던 건 아니라 병원에 가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여기는 케냐란 말이다.
케냐에 사는 교민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케냐에서는 아프면 안 돼"
병원에 갔다가 병을 더 얻어 왔다는 이야기, 보험 없이 간단한 증상으로 병원에 갔다가 이 검사, 저 검사받느라 돈만 몇백만 원 쓰고 결과도 제대로 얻지 못했다는 이야기, 허술하고 원시적인 의료 시설 때문에 여기서 치료를 받은 후에 반드시 한국 가서 다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 심지어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는데 뱃속에 수술용 거즈가 들어있었다는 무시무시한 경험담까지.. 그래서 이곳에 사는 교민들은 아파도 왠만한면 병원을 가지 않는다.
우리 가족은 케냐에 살면서도 매년 한 번씩은 한국을 다녀왔었고, 한국에 갈 때마다 간단한 건강검진과 병원 진료를 받아왔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크게 케냐에서 병원에 갈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COVID-19 때문에 2년째 한국을 가지 못하고 있던 터라 나도 모르게 병을 키우고 있었던 거다.
내가 받은 진단명은 갑상선 기능 항진증.
자가면역질환(자가면역질환은 자신의 정상적인 신체 조직이나 세포에 대한 비정상적 면역반응이 나타나 발생하는 질환 상태)의 한 종류로 갑상선 호르몬이 정상보다 많이 분비되어 몸의 에너지가 빨리 소모되고 많은 기능이 항진되는 질병을 말한다.
증상으로는 심박동 수가 빨라지고, 혈압 이상, 숨찬 증상, 신경질적이고 안절부절못하며 감정의 변화가 심해지는 등의 정서 변화가 나타나며 우울감이나 불면증도 생길 수 있는데 딱 내가 겪고 있는 증상들이었다.
그래 나는 갑상선 항진증에 걸린 것이다.
케냐 살이 5년 차.
사업 시작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내 나이 어느덧 40대 중반
속절없이 늘어만 가는 나이와 함께 찾아온 병
타지에서 아프면 정말 서럽다. 그런데 나이 들어 타지에서 아프니 더 서러웠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병원도 제대로 없는 이 아프리카 케냐까지 와서는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었다.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남편에게 괜히 화가 치밀어 올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만 꽥 질렀다.
한참을 우울감에 빠져 있다가 다시 마음을 돌려 잡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간단한 병이고, 치료가 가능한 병이고, 지금이라도 발견했으니 다행이다.
내가 몸이 좋지 않을 때 집안일이나 힘든 일을 도와줄 수 있는 하우스키퍼가 있음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케냐에 살고 있어 누릴 수 있는 사치이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 게 아니니 내 마음대로 시간을 조절해서 쉬고 싶을 때 쉬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열심히 제자리를 지켜주는 고마운 직원들 덕분이다.
4계절 따뜻한 봄날 같은 케냐 나이로비의 날씨 덕분에 햇볕을 쐬고 싶을 때 언제든 햇볕에 나가 앉아 있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뜨거운 햇살 아래 앉아 크고 웅장한 나무들이 뿜어내는 청량한 공기를 큰 호흡으로 들이마셨다 내 쉬면 내 몸에 나쁜 기운들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2021년부터는 무엇보다 좀 더 내 몸과 마음을 잘 살피며 살아야지 다짐한다.
좋은 것만 먹고,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사람들만 만나며 스트레스받지 않고 살아야지 다짐한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은 전하며 살아야지 다짐한다.
Pole Pole(뽈레 뽈레) 천천히
Hakuna matata(하쿠나 마타타) 다 잘될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