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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내 아이는 이게 문제야

by 바스락북스

내 아이는 객관적으로 예쁜 얼굴은 아니야.

내 아이가 객관적으로 머리가 좋지는 않아.

내 아이가 객관적으로 운동 신경이 뛰어나지는 않아.

내 아이가 또래보다 키가 작아, 뚱뚱해, 다리가 짧아, 공부를 못해!


객관적이라는 것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하는 것"이다.

사전적 정의가 이러하다면 내 아이를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본다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


어떤 경우에도 객관적이지 말고 그냥 지극히 주관적이어야 할 대상이 있다.

그건 바로 내 아이들이다.

내가 아니라도 이 세상에는 내 아이를 어떻게든 객관적인 잣대로 판단하는 사람들 투성이이고, 내가 아니더라도 내 아이는 세상에 나가면 세상의 잣대로 끊임없이 비교당할 텐데 왜 엄마가 자녀들을 그렇게 객관적으로 보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건가?


산후 조리원의 신생아 침대에 뉘어지는 순간부터 내 아이는 누군가의 비교의 대상으로 객관화되기 시작했다.

"어머니~ 지아가 다른 아가들 보다 우유를 더 잘 먹네요."

"어머니~ 지아가 얼마나 잘 웃는지, 다른 애들보다 눈이 한번 더 가요."

"어머니~ 지아가 잠도 잘 자고 보채지도 않고, 다른 아가들에 비해 너무 순해요."

이런 식이다.

산후 조리원 직원들이야 이런 식의 칭찬이 아기 엄마를 위한 최선의 배려라고 생각해서 말을 한 거겠지만, 침대 위에 누워 아무것도 모른 채 누군지도 모를 옆 침대 아이랑 객관적으로 비교를 당하고 있는 아가들은 도대체 무슨 잘못인가?

산후 조리원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쭈욱~ 내 아이는 평생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평가받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90점? 너희 반에 90점 이상되는 애가 몇 명이나 더 있어?"

" 아빠는 어렸을 때 뭘 한번 시작하면 진득하게 앉아서 끝을 봤는데 너는 왜 이렇게 끈기가 없니?"

"**이는 친구도 잘 사귀고 저렇게 예의 바른 거 봐봐. 너는 왜 저렇게 못하니?"

" 동생은 방 정리도 저렇게 잘하는데 너는 형이 되가지고 왜 이것밖에 못해?"


안다.

다 내 자식 잘되라고 그러는 거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내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같은 선 상에 놓아두고서 비교해 가며 부족한 점은 채워주고 싶고, 틀린 부분은 고쳐주고 싶고, 튀는 행동은 바로잡아주고 싶고, 내 자식이 조금 더 풍족하고 나은 인생을 살게 해 주고 싶어 그런 거다.

이게 부모 마음 아니겠는가?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공부 잘하고, 성격 반듯하고, 친구관계가 뛰어나고, 매사에 열심히 하고, 자기 꿈은 스스로 찾을 줄 알고, 한번 마음먹은 일이면 알아서 척척 해내는 옆집 아이는 옆집 엄마인 내가 봐도 대견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그런데 공부 못하고, 성격은 예민하고, 소심해서 친구도 못 사귀고, 뭐든 대충대충 하고, 꿈도 없고, 뭐든 시작만 했지 끝낼 줄을 모르는 내 아이는, 도대체 이 아이는 누가 인정해주고 사랑해줘야 하는 걸까?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고치려 들고, 비웃고 무시할 텐데, 그런데 아이의 부족함이 끝내 고쳐지지 않는다면 내 아이는 세상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며 살 수밖에 없는 건가?


아이를 내가 원하는 올바른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 남들과 비교하며 고치려 하고 바꾸려 하는 것에 제발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사랑이 아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외모를 가졌든,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든, 어떤 행동을 하든 나를 무조건 인정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있는 사람은 삶이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


누가 뭐라든 신경쓰지말고 지극히 주관적으로 내 아이를 인정하고, 칭찬하고, 들어주고, 믿어주고 격려해주자.

이 세상에서 오직 부모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오직 부모만 그렇게 해 주면 된다.

그런 믿음과 사랑과 인정을 받고 자란 아이는 알아서 자기 인생을 씩씩하게 잘 살아 나갈 것이다.


ps. 아마도 이 글에 불편함이 느껴지는 부모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이유가 뭘까 한번 천천히 돌아보자.

혹시 나는 자라면서 이런 무조건 적인 믿음과 사랑과 인정과 격려를 받은 적이 있었나?

혹시 내 부모가 나를 이렇게 끊임없이 평가하고 비교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나? 그래서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혹시 나는 나 자신에게도 이렇게 끊임 없이 객관적인 평가를 하고 남들과 비교하며 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은 아닌가?

그래서 지금.. 잘 살고 있는가?

당신은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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