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_1 자꾸만 뭘 그렇게 하려고 그래
내 인생이 이렇게 바닥까지 내려가다니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하고 있는 거지??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나는 한국에 가면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간절히 쉬고만 싶었다.
마음은 그렇지만 그래도 내가 7살 된 어린 딸의 엄마인데 자식을 나 몰라라 하고 나만 살겠다고 혼자 편히 쉬기만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그래서 한국에 오기도 전부터 '내가 쉬기 위해서 지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내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케냐에서 갑작스레 한국 여행을 준비하며 그녀들에게 이 문제에 관한 고민은 털어놨을 때 그녀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렇게 대답했다.
그녀들 : 지아는 지아에게 맞는 인연이 찾아올 거예요. 너무 미리 모든 걸 계획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가볍게 해 보세요.
그래, 이 "계획병"! 뭐든지 완벽하게 준비하고 대비하려는 이 계획병이 내 인생을 항상 심각하게 만들었지.
이번에는 아무 계획 없이 그냥 저질러보자.
때마침 나에게는 딱히 다른 대안도, 다른 대안을 생각할 에너지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아무런 대책 없이 나와 지아는 17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케냐 나이로비에서 한국, 통영으로 왔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컴퓨터 게임보다, 유튜브보다 재밌다고 할 만큼 지아는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한다.
한국에 도착하고 며칠 후부터 지아는 케냐에 있는 친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대며 "카 웨라가 보고 싶어, 엘라랑 놀 때 정말 재미있었는데, 유치원에 가고 싶어. 왜 나만 유치원에 못 가는 거야!!"라며 칭얼 칭얼 대기 시작했다. 칭얼대는 소리에 올라오는 화를 꾹꾹 누르며 지아를 겨우 달래고는 집 앞 갯벌에 꽃게를 잡으러 나가자 꼬셔서 산책을 나갔다.
썰물에 물이 빠져 반짝 반짝 빛을 내는 갯벌을 보며 방파제를 따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린이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기 한번 가보자!!
우리는 홀린 듯 간판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서 걸어갔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그림처럼 아담하고 예쁜 어린이 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꿈이 있는 어린이집"
세상 좋아 보이는 인상의 원장님이 나와 지아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케냐에서 한 달 살기를 하러 통영에 왔는데, 혹시 아이를 받아주실 수 있냐고 물었더니 원장님은 깜짝 놀라면서도 너무나 흔쾌히 괜찮다고 하셨다. 보통은 1년 단위로 원생을 받지만 지아는 특별히 받아주시겠단다. 그리고는 어린이집 가방, 활동 티셔츠까지 챙겨주시며 내일부터 당장 등원을 하라고 하신다.
국민행복카드를 발급받으면 정부에서 제공하는 보육수당을 받을 수 있고 그걸로 어린이집 수강료 , 급식비, 통학차량 비용까지 모두 지원을 받을 수가 있다는 꿀팁까지 주시면서.
어머나 세상에! 어린이집이라니!!
이건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모든 일이 이렇게 물 흐르듯이 이루어지다니!
지아는 너무나 행복하게 어린이집을 다녔다.
친구들도 금세 사귀었고 선생님들의 사랑도 듬뿍 받으며 한국 교육 시스템을 제대로 경험하고 즐겼다.
한국에 와서 이 어린이집을 만나는 것이 지아에게 준비된 인연이었나 보다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그날 이후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나에게 황금 같은 자유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잘~보내야 할까? 설렘으로 벌써 마음이 조급해졌다.
햇살 : 이 좋은 기회를 뭘 하면서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다시 계획병이 도지는 순간이다.
그녀들: 뭘 하고 싶으세요?
햇살 : (한참을 고민하다가) 사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
그녀들: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항상 바쁘게 뭔가를 준비하고 계획하고 실행하기를 반복해야 제대로 사는 것 같아 성이 차는 나에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딱 이런 내 성격 때문에 지금 나는 번아웃이 되었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관계는 엉망이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 지금까지 살던 대로는 해결책이 없었으니 앞으로는 내가 안 해본 대로 살아봐야겠다.
나는 진짜로 며칠을 특별한 일정도 계획도 없이 먹고 자고 쉬며 보냈다.
지아를 유치원 차에 태워 등원시키고 나서 바닷가가 보이는 거실, 무중력 의자(이 의자 정말 너무 좋다!!)에 앉아 책을 보다가 잠이 오면 스르르 낮잠을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다. 처음에 이곳으로 올 때부터 그녀들에게 난 요리를 하지 않을 거고 대신 설거지와 쓰레기 버리기를 담당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끼니때마다 밥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세끼 밥 걱정 안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선물인지.
며칠을 이렇게 마음껏 쉬고 에너지는 조금 회복되었으나 빠질듯한 어깨 통증, 바닥으로 가라앉듯 무거운 몸의 상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햇살: 아무래도 어깨 통증이 좋아지지가 않아요. 살이 너무 쪄서 몸도 무겁고. 병원도 좀 다니고 운동을 좀 해야 할 것 같네요. 자세 교정을 위해 필라테스나 요가 같은 걸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녀들 :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
그날 바로 검색을 통해 집 가까운 곳에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찾아갔고, 나에게 딱 맞는 요가 클래스와 필라테스 클래스를 찾아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굳이 미리 애쓰고 준비하지 않아도 마치 모든 것이 그렇게 되기로 되어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며칠을 그렇게 지내보다가 알게 되었다.
그녀들 또한 딱히 매일 뭔가를 계획하거나 억지로 노력하며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녀들의 하루 주된 일정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 일기, 유튜브 보기, 음악 듣기, 집 앞이나 경치 좋은 곳 찾아 산책하고 운동하기, 그림 그리기 그리고 몇 가지 취미생활이었다. 통영시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요가 수업, 캘리그래피 수업, 기타 연주, 탁구 수업으로 일주일의 일정이 짜여 있긴 했으나 날씨가 좋지 않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그냥 가볍게 건너뛰고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쿠키를 구워 먹으며 여유롭게 보냈다.
작은 텃밭을 가꾸고 매일 신선한 야채를 수확해 가볍고도 건강한 식탁을 차려내어 끼니를 해결했다.
식사 준비도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배가 고픈 사람이 자기가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해 요리를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걸 즐겼다. 누군가 산책을 가고 싶으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었고,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은 따라나서고 다른 사람은 그냥 집에서 쉬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배우고 싶은 걸 배우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집이 더러우면 청소를 하고 빨래가 쌓이면 빨래를 했다.
세상에 이런 신선놀음이 없다 싶었다.
그래서 그런가?
그녀들의 얼굴에서는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났고 에너지가 넘쳤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매일매일을 하고 싶은 거만 하면서 편하게 지낼 수가 있어?
이래도 되는 거야??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였다면 난 왜 그렇게 매일 바둥 바둥대며 열심히 살려고 나를 채찍질했던 거야??
한참을 투덜투덜거리다 문득 책상 위에 놓인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불평, 불만, 미움, 원망, 피로, 짜증에 절은 한 여자가 서있다.
내 인생이 뭔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근본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
갑자기 장기하의 노래가 떠올랐다.
그녀들: 삶은 원래 발버둥 치고 버티고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니에요.
삶이란 즐기면 되는 것, 재미있게 살면 되는 거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건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배움을 얻고 성장하고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예요.
특별히 무언가를 애써 할 필요가 없어요. 필요한 것은 자연스럽게 우리 앞에 나타날 거예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본인이 하고 싶은 일, 본인이 행복한 일을 찾아서 하면 된다는 거죠. 그게 뭔지에 대한 답은 자기 자신만 알고 있어요.
가만히, 마음을 고요히 하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물어보세요.
햇살: 하지만 어떻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가 있어요? 그거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요? 가정 주부니 집안일도 해야 하고, 아이도 돌봐야 하고, 남편도 챙겨야 하고, 시부모님에 친정부모님도 신경 써야 하고, 회사 일도 해야 하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나 좋은 것만 하며 있을 수가 있냐고요. 그건 불가능해요.
그녀들: 햇살님에겐 그것이 불가능한가요? 그럼 지금처럼 계속 그렇게 지내세요. 하기 싫은 일이나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억지로 하고, 가족을 위해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생각하며 나도 다른 사람도 불행하게 만드는 그 일을 계속하시겠다면 그렇게 하세요.
햇살: 아니 아니 아니 더 이상은 이렇게 살지 않겠어요.!! 이렇게 살 순 없어요! 달라지고 싶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제발 방법 좀 알려주세요!!
그녀들 : 아주 쉬워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마세요.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걱정하는 것을 멈추세요.
오로지 현재에 머무르고 현재에 살기만 하면 된답니다. 생각이 과거에서 미래로 미친 듯이 날 뛰면 그것을 알아차리고(아~내 생각이 날뛰고 있구나) 다시 현재로 돌아오세요.
햇살님이 할 일은 햇살님의 인생을 즐기는 것 밖에는 없어요. 남의 인생을 챙긴다고 착각하며 그들 인생에 간섭하는 일을 멈추세요. 7살 난 지아에게 한국에서 어린이집을 다니는 멋진 경험과 인연이 준비되어 있듯, 모든 사람에겐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 있고, 각자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나름의 숙제가 있어요. 자식도, 남편도, 부모도, 친구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이 자신의 인생을 그들의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게 그만 놓아두시고 햇살님은 햇살님의 인생을 즐기며 사세요.
햇살: 아~~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데... (또 반박하려다 내가 고집을 부리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해 볼게요.
특별히 뭔가를 자꾸 하려고 하지 않고, 닥치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계획 세우고 준비하지 않고,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한번 살아보겠어요.
오~삶은 원래 그렇게 발버둥 쳐야 하는 게 아니었어.
삶이란 즐기면 되는 것, 재미있게 살면 되는 거였어. 이걸 몰랐다니!
아, 그래서 그 모든 어리석은 생각과 자신에 대한 판단, 제한적인 믿음 때문에 내 몸이 암이라는 걸 만들어냈구나. 이 모든 것들이 내 안에 그토록 많은 혼란을 만들어냈던 거야.
세상에, 우리가 여기 온 건 그저 우리 자신을 기분 좋게 느끼고 삶을 기분 좋게 느끼기 위해서라는 걸, 그저 우리를 표현하고 재미있어하기 위해서라는 걸 몰랐다니!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나는 판단이 아니라 부드러운 사랑을 받을 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별히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내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였다.
이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나는 늘 노력을 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암, 임사체험, 그리고 완전한 치유에 이른 한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중에서
% 현재 나의 상태
수치심 30 % : 나를 이렇게 망가뜨린 게 나였나?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분노 30% : 내 인생이 이렇게 바닥까지 내려가다니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하고 있는 거지??
두려움 20% : 이 방법도 통하지 않으면 어쩌지? 내 인생이 이렇게 계속 반복되면 어떻게 하지?
용기 20% : 이번이 정말 좋은 기회일지도 몰라! 한번 해보자! 달라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