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쓰는 일상 일기.
알람에 깨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비척비척 걸어가 컵을 손에 쥐었다.
몇 시인지 생각도 하지 않고 더듬더듬 손으로 선반 위 키를 찾았다. 키를 잡고 삐걱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아무도 없는 기숙사 복도를 지나, 맨날 열려 있는 창문을 지나, 문 없는 공용샤워실을 지나갔다. 눈이 아픈 형광등이 쨍하게 켜져 있었다.
엘레베이터 앞까지 걸어 지나가 공용 부엌으로 들어갔다. 정수기에 콸콸콸 찬 물을 담고 멍하니 그 물줄기를 쳐다봤다.
다 찬 플라스틱 컵을 공손히 들고 총총 다시 방으로 걸어갔다. 가지고 나온 열쇠를 문에 넣고 돌린 다음, 조심스럽게 등으로 문을 밀어 열었다.
여전히 자고 있는 룸메이트 언니. 언니는 어제도 늦게 들어왔는지 대자로 누워 쿨쿨 자고 있다.
물컵을 어지러운 책상 위에 올려두고 책상 형광등을 켰다. 책상에 앉았다.
컴퓨터를 열었다. 지금 시간은 새벽 6시. 앞으로 1시간은 글을 쓸 수 있다.
요즘 쓰는 글은 로맨스 판타지. 잘 쓰지 않았던 육아물이다. 아이도 잘 모르면서 무슨 육아물을 쓰겠다고 했는지.
항상 그렇듯 본인의 충동성을 비웃어 준다. 써야 하는 장면을 워드 파일에서 확인했다.
글을 쓰기 전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바로 글을 쓴다. 내가 하던 것을 내려놓고 글부터 쓸 수 있을 만큼의, 중독성. 그 쾌감.
그 정도로 즐겁게 쓰는 글을 원하기 때문이다. 2023년의 목표는 즐겁게 글을 쓰자! 이기 때문에 분량도, 아웃라인도 신경쓰지 않고 보고 싶은 장면을 글로 옮긴다. 날 즐겁게 하고 웃게 하는 그 장면을 글로 쓴다.
25분 글쓰기. 1분 눈 감고 쉬기. 5분 놀기.
이걸 두 번 하다가 1시간이 끝난다. 시간은 7시. 아직도 룸메 언니는 일어나지 않았다.
7시가 되면 선반에 있는 프라이팬과 기름을 들고 부엌으로 간다. 아무 생각 없이 일단 불을 킨다. 기름 조금, 계란 하나.
그대로 지글지글 굽고 다시 방으로 돌아간다.
따듯하게 보온된 밥을 퍼서 그릇에 담고. 아무 생각 없이 밥을 입에 넣는다. 배가 고프든 안 고프든 먹어야 한다.
아이패드를 열어 보고 싶었던 아이돌의 자체 콘텐츠를 본다. 웃으면서 보다가 컵에 녹차 티백을 넣어 뜨끈한 차를 홀짝 거리고 다시 본다.
그러다 보면 8시.
프라이팬과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간다. 바쁘게 옆에서 요리하는 러시아 언니를 휙 보다가 시끄러운 그녀의 핸드폰을 쳐다본다.
러시아어로 시끄럽게 떠드는 뉴스 유튜브 영상. 그 앵커의 알 수 없는 말을 배경 음악 삼아 간단하게 설거지를 한다. 다시 방에 돌아오면서 마주친 언니들과 반갑게 아침 인사를 나눈다.
방에 오면 양치를 하고 옷을 입고 도서관에 갈 준비를 한다. 8시 30분에는 학교 도서관에 도착하고 싶기 때문에 빨리 준비해야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쓰던 백팩에 노트북, 아이패드, 무선이어폰, 유선이어폰, 우산, 물통, 충전기, 지갑까지 챙기고 나온다.
슬쩍 룸메 언니를 보고 저 언니가 과연 오늘은 10시에 일어날 수 있을까 0.3초 걱정을 해준다. 하겠지, 뭐. 대충 생각하고 엘레베이터를 누른다.
밖에 나가면서 오늘까지 네번째 보는 아침 러닝하는 남학생을 보며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학교 가는 홍콩 아이들과 기숙사 바로 옆 소방서에 큰 소방차들을 구경한다. 문도 안 연 웰컴 마트를 보면서 내가 진짜 일찍 나오긴 했구나를 실감한다. 그러다가 아는 얼굴을 마주치면, 저 사람 오늘 새벽 기도 갔다왔군 하고 머쓱하게 눈을 피한다.
그 남자는 아는 사람이지만 아직 한번도 독대를 해본 적이 없다. 한국인이지만 미국인이고, 이름은 미들네임까지 있는 영어식 이름인데다가 얼굴도 잘생겼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그와 썸씽을 나누고 있는 친한 친구가 있기에 이 호감은 그저 호기심으로만 유지시키고 있다.
오늘도 많이 모인 비둘기들을 꺼림찍하게 보면서 지하철 역으로 간다. 많은 인종들 사이에 섞여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빽빽하게 넣은 핸드폰 뒷 카드지갑 속 카드들 사이에서 지하철 카드를 끙끙거리며 꺼낸다. 삑. 개찰구에 찍고 나면 오늘은 충전을 해야겠군, 오늘은 점심까지 먹을 수 있겠군 같은 어림이 된다.
홍콩의 에스컬레이터는 오른쪽이 가만히 있는 줄. 왼쪽이 걸어가는 줄이다. 길게 늘어지는 오른쪽 줄에 몸을 살짝 넣어 낀다. 절대 차가 도착해도 뛰지 않는다. 다음을 기약한다. 작은 여유를 누리며 철도 앞까지 걸어간다.
스크린도어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며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하철에 탄 후, 빠르게 가는 속도에 잠깐 멍을 때린다. 띵. 도착하여 내린다. 부지런한 학생들 사이에서 함께 학교를 향해 걸어간다.
학교에 도착한다. 아침은 광장무를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신다. 구성진 중국 노래를 틀어놓고 작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일동 손을 위로 쭉 뻣고 눈을 감고 있다. 그리고 천천히 부드럽게 그 팔들이 다시 옆으로 펼쳐진다. 그 무리의 대장격인 할머니가 맨 앞에서 가장 당당하게 체조를 하고 있다.
이건 항상 봐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광경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지나쳐서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앞에는 미리 타고 있는 전형적인 너드형의 (물론 나도 너드이지만) 남학생이 멍을 때리고 앞을 보고 있다. 같이 내려서 아침의 도서관에 학생카드를 찍고 들어간다.
학생카드에는 숏컷을 했던 시절의 내 사진이 있다. 엄마가 장난으로 아들이다 라고 하는 그 사진이다. 다시 봐도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외모에는 아무 생각도 없던 (물론 지금도 없지만) 갓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간 해맑은 오대오 가름마의 남학생 같다. 외동으로 행복하게 자란 1980년대의 성격 좋은 지식인 같다. 보면서 속으로 킬킬 웃어준다.
사람이 별로 없는 도서관을 보며 희열을 느껴준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통유리 창문 앞 책상에 자리를 잡는다. 컴퓨터를 열어 오늘 수업하는 강의를 위한 예습을 한다. 25분 공부. 1분 눈 감기. 5분 놀기. 5분 노는 시간에 두 명의 친구에게 연락을 한다.
치와 1층에 자리 잡아 놓음. 올 사람 와~. 왓츠앱에 문자를 날리고 찰칵 자리 사진을 찍어 날린다.
자려나? 안 올 수도 있고 올 수도 있는 이 사람들. 대충 생각을 정리한다. 헤르미온느에 빙의해서 교과서에 빠져든다.
10시에 자리는 그대로 두고 컴퓨터만 달랑 안고 총총 밖으로 나간다. 강의실을 찾아서 돌아다닌다. 빼곡하게 모인 사람들에 휩쓸려 강의실에 도착한다. 오늘은 점심을 뭘 먹을까. 점심 먹을 사람을 아까 채팅방에서 구한다고 문자를 보낸다. 마침 들어온 교수님을 보고 바로 노션앱을 켜서 강의 필기를 한다.
꾸벅꾸벅 졸다가 기함을 토하며서 사탕을 꺼내 입에 넣는다. 이래서 맨날 앞에 앉는다. 교수님 보고 눈치라도 느끼게.
사탕이 결국 입 안을 가득 채워버렸다. 절대 졸 수 없다. 이번 학기 성적 올려야 한다. 우물우물 사탕을 굴리며 눈을 번쩍 뜬다.
언니. 총옛밍 앞에서 만나. 문자에 답이 왔다. 다 끝난 강의실에서 후다닥 나와 친구를 만난다. 식당을 간다. 처음 봤을 때 많이 해맸던 키오스크에서 쌀국수를 시키고 총총 쌀국수를 받아 온다. 먹으면서 친구의 덕질 이야기에 경청한다.
서로의 이상형 이야기를 살짝 하다가, 나는 내가 드디어 사람이 되었다고 킬킬거린다. 완벽한 사람을 찾던 나는 요즘 완전히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다정하고 따듯하고 인간 같은 사람. 그런 나를 보며 그녀는 장난스럽게 중얼거린다. 언니는 사람이 되고 있는데 나는 더 멀어지고 있다고.
대한민국의 날씨를 말하며 비 오니까 우산 챙기라는, 하루 잘 보내라는 한국의 아이돌의 톡을 받으며 나와 친구, 그리고 홍콩 친구는 씁쓸하게 웃고 장난스럽게 킬킬거린다. 이래서 같은 나라에 사는 게 중요하다니까! 홍콩 언제 오냐고, 당신들! 여긴 비 안 와!
도서관에서 잠깐 복습을 하다가 다시 강의실로 간다. 푹 익어 도서관으로 컴백한다. 도서관에서 한 두 시간 공부한다. 5시에 저녁을 먹으려고 집으로 온다. 집으로 오는 길에 웰컴 마트에 들려서 뭐든 사온다. 연어든, 고기든, 아보카드든, 식빵이든, 냉동 딤섬이든, 아니면 하다못해 순두부라도.
요즘은 먹는 게 일이다. 먹기가 즐겁지 않다. 그러나 그 생각도 할 틈을 주지 않고 바로 프라이팬을 들고 부엌으로 간다. 아직은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혼자 창문 앞 장엄한 초록색의 산을 보고 판타지 상상을 한다. 저기서 외계인이 사는 상상. 그러다가 창문을 통해 들어온 팅커벨만한 나방을 보고 바로 뒷걸음질 친다. 대충 요리를 하고 뜨거운 프라이팬 그대로 방으로 들어온다.
아이패드를 열고 먹고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할 때쯤 자주 보는 홍콩인 언니가 수줍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인사를 하며 물이 뚝뚝 떨어지는 프라이팬을 들고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샤워를 한다. 아무도 없는 공동샤워실에서 가장 좋아하는 샤워칸으로 들어간다. 위에 달린 형광등 하나, 누군가 남긴 목걸이가 남은 선반, 판자로 만든 샤워칸 문. 그 안에서 뜨거운 샤워를 즐긴다. 바리바리 옷을 안고 다시 방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룸메 언니가 활자가 빼곡한 노션 노트와 인체 사진을 보다가 나를 쳐다본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내가 물어보면 언니는 밝게 대답한다. 수업을 쨌다던가, 클럽 활동을 했다던가 등등. 웃으면서 밀린 근황을 나눈다. 한국에서 사 온 바나나우유, 초코 쿠키 등을 주며 언니와 정을 쌓는다.
다시 조용해지면 컴퓨터를 키고 오늘의 복습과 내일의 예습과 과제를 한다. 귀에는 카랑카랑한 메탈 음악, 백예린의 선물 같은 앨범, 엔시티 드림의 사랑하는 음악들을 꽂는다. 그러다가 물을 받으러 부엌으로 나온다. 등에 타투가 있는 (샤워실에서 가끔 마주칠 때 보았다) 멋있는 한국인 3학년 언니가 미드를 틀고 저녁을 먹고 있다. 언니와의 인사는 가끔씩 어렵다. 영어로 해야 할지, 한국어로 해야 할지 헷갈린다. 그러나 나는 한국어로 하기로 결심했다. 오랜만에 쓰는 언니라는 말과 반말로 인사를 나눈다. 언니는 난 코리안걸 같은 일은 안해 라고 말하며 내게 초장에 반말해도 된다고 허락했다.
듣고 허 입을 벌리고 당황했다. 코리안걸? 너무 명백하게, 너무. 편견아냐?
하지만 생각해보면 존댓말, 선배라는 호칭 등등이 한국 문화이기는 하다. 그렇든 뭐든 나는 반말이 편하니 내게는 좋은 일이다.
방에 들어와서 다시 공부를 한다. 9시 40분에 노트북을 닫는다. 불을 끄며 룸메 언니에게 항상 하는 말을 한다. 불 꺼도 돼? 그러면 답은 같다. 바쁜 언니가 하는 대답. 잘자 혹은 꺼도 돼.
남들은 딱딱하다고 불만하는 침대에 만족스럽게 누운다. 무언가 사는 것에 불만이 생기기 전에 나는 항상 게르를 생각한다.
게르에서 살았던 일주일.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일자로 누워 남들과 꼭 붙어 잤다가 일어나는 것을 톡톡히 경험했다. 게르는 아주 작고, 사람은 많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재밌었지만 일어나자마자 느껴지는 뻣뻣하고 굳은 허리의 통증은 즐겁지 않았다.
그런 기억을 생각하며 감사한다. 여긴 게르도 아닌 걸, 뭐. 이 정도면 되었다. 전기 매트를 키고 내 안대를 침대 베드 근처에서 찾는다. 땅바닥에 떨어진 안대에 먼지를 툭툭 손으로 치운다. 그리고 핸드폰을 충전시킨 후 다시 누워 안대를 쓴다.
누워 기도를 한다. 오늘을 나누고 내일을 나누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하기를 원하실까? 기도를 하다가 내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야 하는 걸 생각한다. 자야 해. 자야 해.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 내일 같이 새벽 기도를 갈 사람들을 모집한다.
몇 명 손을 들다가 오늘 아침에 보았던 그 아는 얼굴이 답했다. 내일은 드디어 통성명을 할 수 있을까 피식 웃고 핸드폰을 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알람에 깨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창 밖은 아주 캄캄하다. 바로 옷을 갈아입고 도서관에 갈 짐을 챙긴다. 그리고 키와 핸드폰을 챙긴 뒤 기숙사 1층으로 내려온다. 기다리다보면 츄리닝 차림에 남학생이 나온다. 같이 인사를 나누고 택시를 기다린다.
인도에서 살았다는 그 오빠는 흥미롭다. 엠비티아이는 t인데다가 장남이다. 장난스럽지만 무게감이 있다. 특히나 나 같이 팔팔 맨날 날라다니는 사람한테는 아주 신기한 사람이다. 밤을 달려나가는 택시 안에서 수다를 떨다가 기사 아저씨를 겁 먹은 눈으로 쳐다본다. 너무 빨라요, 기사님. 우리 죽는 거 아냐? 불안하게 농담을 주고 받는다.
나는 틈날 때마다 오빠에게 인도 이야기를 물어본다. 다시 살고 싶지 않다며 그는 도로 위 앉아있는 소 이야기나, 인도 KFC에 있는 닭은 자신이 다 먹었다며 먹을 게 문제라고 울상을 지었다. 그걸 들으며 나도 무언가 중국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눈치를 본다. 중국도 중국에 같이 있었던 사람한테 해야 공감을 하고 하지. 다른 나라에 살았던 사람한테 나 이만큼이나 고생했다고 떠벌거려봤자 불행배틀이나 뜰 것 같다. 그래서 입을 닫는다.
교회에서 새벽 기도를 마치고 나와 언니오빠동생들을 보고 근황을 나눈다. 대부분 베이징, 상하이 혹은 인도. 한 명은 아마도 미국. 성장기를 외국에서 보낸 사람들이라 배경이 비슷하다. 그들과 헤어져 같이 온 오빠와 함께 혹은 나 혼자 지하철을 타고 바로 학교로 간다.
도서관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다. 예습을 하고 첫 수업을 들어가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간다. 한 시간 동안 낮잠을 잔 뒤 점심을 먹는다. 일어나 다시 도서관에 가서 예습, 복습, 과제를 한다. 그리고 5시까지 공부를 한 다음 집으로 돌아간다.
워드 파일을 열어 요즘 쓰는 로판을 쓴 뒤 연재 플랫폼에 올린다. 최대한 조회수와 선호작품 수를 안 보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웰컴마트로 총총 걸어간다. 금요일이면 예쁘게 입은 한국인 여학생들이 귀엽게 모여있다. 아마도 클럽에 가려는 사람들이겠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보다가 입을 꾹 닫고 지나친다.
남색의 하늘을 보며, 산을 보며, 거리에 새로 생긴 베이커리를 구경하며 웰컴마트를 간다. 가서 뭐라도 저녁거리를 산다. 등산 같은 가파른 언덕을 올라 기숙사로 돌아온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끝내고 복습과 과제를 할 생각으로 컴퓨터를 연다. 띠링. 이메일이 와있다. 전에 넣었던 용병왕 투고 이메일이다. 몸이 바로 굳는다. 반려일까 긍정일까. 고민하다가 메일을 연다.
그래서 이게 반려야 긍정이야. 얼굴을 찡그리고 굳은 채로 글을 읽는다. 투고를 보낼 때부터 구구절절 컨택이 아니더라도 담당자님의 생각과 조언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간절하게 썼다. 친절하고 친절한, 바쁜 시간을 쪼개어 아무것도 없는 나를 도와주고 계신 담당자님들의 긴 피드백을 읽는다. 이럴 때는 내 마음의 가드를 내려야 한다. 가드 올려가 아니라 가드 내려. 이건 다 피와 살이 되는 조언이다. 마음을 굳게 먹고 꼼꼼하게 피드백을 읽는다. 그러다가 이게 거절메일이라는 걸 본다. 뻣뻣한 미소를 짓고 큰 숨을 들이킨다.
그리고 바로 유튜브에 들어가서 음악을 튼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저기서 공통된 의견을 또 찾았다. 아이고, 우리 지수가 많이 개조가 되어야겠구나. 끙 한숨을 쉬며 달력을 확인한다. 1월 30일까지는 용병왕 수정을 하지 않을 예정이다. 1월달은 로판 투고용 글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월 30일에 용병왕을 넣은 공모전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코딩을 할 생각으로 유료결제한 외국 강의를 튼다. 진짜 하나도 모르겠다. 정말 하나도. 헛웃음을 짓는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오히려 시원하다. 정말 처음 쓰는 근육을 단단하게 만드는 기분이 든다. 30분 알람을 설정해놓았는데 그 시간을 버틴다. 그러다가 알람이 울리면 빨리 인강 화면을 끄고 컴퓨터를 닫는다.
룸메 언니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다. 언니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어서와! 온 걸 환영해! 나의 교과서로 배운 바른 영어는 이렇게 반듯하고 귀엽고 오글거리는 말들을 잘 한다. 그녀와 아야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란다. 그래서 맥스랑 같이 저녁 먹었다고? 왜 말 안 했어! 맥스는 언니의 짝사랑 (사실은 쌍방인 것 같지만) 상대다. 내년이면 다른 학년으로 가고 언니도 내년이면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가기에 전전긍긍했었다. 이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기쁘다. 그녀의 로맨스를 응원하며 컴퓨터를 키고 예습을 마저 한다.